▲블라인드. ⓒ컨텐츠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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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 모티브…아름다운 사랑 담은 가슴 시린 영화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15년 만에 첫 공식 개봉한 타마르 반 덴 도프 감독의 ‘블라인드(영제: Blind)’는 외모가 아닌 내면에 이끌리는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동화 같은 영화다.

(이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은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자신 안의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그의 분노를 그 누구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오직 루벤의 어머니 ‘캐서린’(카테리네 베르베케)만이 모정으로 애처로운 아들의 곁을 지킨다.

캐서린은 아들 루벤에게 책을 읽어줄 사람으로 ‘마리’(핼리너 레인)를 새로 고용한다. 루벤은 마리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그녀에게서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를 느낀다.

루벤은 자신을 거칠게 다루며 제압하는 마리에게 강하게 반항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에게 길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리가 읽어주는 ‘눈의 여왕’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 루벤의 마음속에는 눈이 내린다. 그리고 그 눈은 가시 돋은 그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싼다.

책을 읽어주는 마리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냄새를 맡던 루벤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애정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루벤은 빨간 머리와 붉은 입술, 녹색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마리를 상상한다.

▲블라인드. ⓒ컨텐츠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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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리는 루벤이 상상하는 그 어떤 모습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알비노로 태어난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썹은 새하얀 눈과 같았다. 핏기없는 창백한 피부와 얼굴에는 학대로 인한 흉이 뒤덮여 있었다. 외모 이상으로 내면의 상처도 깊었던 그녀는 루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 연인의 감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캐서린은 아들과 자신 사이에 끼어든 마리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화장대 앞에 앉은 마리에게 본분을 잊지 말 것을 경고하는 캐서린의 눈빛은 냉랭하다.

한편 루벤은 주치의 ‘빅터’(얀 데클레어)를 통해 놀라운 소식을 듣는다. 눈 수술을 받으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기뻐하는 루벤. 하지만 마리는 함께 기뻐해 줄 수 없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루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리는 루벤이 시력이 찾기 전에 그의 곁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블라인드. ⓒ컨텐츠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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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본질’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고뇌 담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은 양서류 인간과 장애인이 서로 교감하고 사랑에 빠져드는 모습을 담고 있다. 외적인 모습에 대한 편견 없이 진실한 사랑을 완성한다는 영화의 주제가 ‘블라인드’에서는 훨씬 더 서정적인 연출과 아름답고 섬세한 화면을 통해 예술적인 모습으로 승화돼 펼쳐진다.

영화 ‘블라인드’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사랑의 본질과 인간적 가치에 대한 고뇌의 여운을 깊게 남기는 수작이다. 흑백 영화에 가까운 회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몽환적이면서도 차갑고 황량한 배경을 뒤로 한 채 루벤과 마리의 사랑만이 그 중심에서 화롯불처럼 타오르는 극의 전개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블라인드. ⓒ컨텐츠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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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력을 되찾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세상의 빛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줬던 마리가 사라지자 그녀를 잊지 못해 필사적으로 찾아 나서는 루벤. 그리고 외모 콤플렉스와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기억에 속박당해 웅크린 채 잘게 쪼개진 감정의 파편을 상처 하나하나에 심고 눈앞의 사랑으로부터 모습을 감춘 마리.

이 두 사람을 ‘눈의 여왕’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법의 거울 조각이 심장과 눈에 박혀 따뜻한 마음을 잃은 소년 ‘카이’와 그를 찾아 나선 소녀 ‘게르다’에 대입해 본다면 좀 더 깊이 있게 영화의 매력을 곱씹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야기만큼이나 격정적이고 감각적인 정키 XL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을 자극한다. 마침내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푸르른 대지 위에 그들만의 행복이 다시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면 마지막은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15세 이상 관람가.

▲블라인드. ⓒ컨텐츠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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