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RE코리아 사무실 입구 ⓒSR타임스
▲CBRE코리아 사무실 입구 ⓒSR타임스

- 고정석 없애고 다양한 형태 좌석 마련…직원 만족도 높아

- 업무환경 전략팀, 오피스 환경 분석으로 효율적인 공간 재배치 컨설팅

[SR(에스알)타임스 김경종 기자] '파놉티콘'은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감옥 양식이다. 파놉티콘은 원형으로 된 수용소 건물 중앙에 감시탑이 설치된 형태다. 감시탑에서는 수용소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수 있지만 수용자들은 감시탑에서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항상 불안에 떤다. 공간과 권력과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같은 형태는 현대 사무실에서도 나타난다. 한 부서의 가장 높은 사람의 자리는 대부분 사무실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고개만 살짝 들면 부하 직원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안하는지 감시할 수 있다. 사원부터 사장까지 직급으로 촘촘히 짜인 현대 기업 구조에서 권력은 직급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공간 배치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공간 배치가 무너진다면 어떨까. 조직 모든 구성원들이 부품처럼 정해진 위치가 아닌 자율적으로 자리를 선택하고 일을 한다면 어떨까. 여기 그런 파격적인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이 있다.

◆ 대표도 집무실이 따로 없다? CBRE식 실험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에서 기존 업무 형태를 부순 새로운 'Workplace 360 오피스'를 선보이고 있다.

CBRE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부동산 서비스 기업으로 전세계 10만 명 이상의 임직원이 530여 개 이상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주요 서비스 분야는 자산관리, 투자관리, 자산 임대, 자산 매각, 담보대출 서비스 및 개발 서비스를 포함한 전략적 컨설팅 등이다. CBRE는 올해 미국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128위에 오르기도 했다.

CBRE의 한국 법인인 CBRE코리아는 지난 1999년 설립됐으며 340여 명의 부동산 전문가들이 부동산 투자자와 임차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BRE코리아는 지난해 1월 서울 종로구 SC빌딩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대대적인 업무 공간 혁신에 착수했다. 그리고 이 변화에는 CBRE코리아 업무환경 전략팀이 중심에 있다. 

업무환경 전략팀은 지난해 신설된 부서로 기업의 비즈니스 목표와 직원의 요구사항을 세밀하게 조사해 최적의 업무 공간을 컨설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업무환경 전략팀을 이끌고 있는 김형주 부장은 "업무환경에 대한 실제 조사를 기반으로 기업에 적합한 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변화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부서"라고 설명했다.

현재 CBRE코리아 오피스는 구성원들의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가구 하나 하나, 미팅룸 이름 하나조차도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결정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정석이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회사 대표마저도 자리가 없다.

▲직원들은 이곳에서 원하는 좌석을 고를 수 있다. ⓒSR타임스
▲직원들은 이곳에서 원하는 좌석을 고를 수 있다. ⓒSR타임스

대표를 포함한 오피스의 모든 직원들은 출근하면서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지문으로 직원 인증을 거친 후 사무실 내의 원하는 자리를 선택한다. 출퇴근 여부도 따로 기록되지 않는다.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된 오피스 내에는 싱글모니터석, 듀얼모니터석, 콰이어트(Quite) 존 등 다양한 형태의 좌석이 배치돼 있어 직원들은 그날그날 원하는 자리에서 업무를 볼 수 있다. 라운지형 오피스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가능하며 베드형 의자도 마련돼 있다.

▲CBRE 업무공간 ⓒSR타임스
▲CBRE 업무공간 ⓒSR타임스

또한 1인용 부스와 폰부스가 오피스 내에 배치돼 개인적인 환경을 원하는 직원들이 사용할 수도 있다. 수도 이름을 딴 미팅룸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대표 집무실이 따로 없다보니 직원과 대표와의 소통도 자연스럽다. 업무공간이 따로 분리돼 있지 않아 오피스 내에서 대표와 마주치는 경우가 흔하게 생기고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서로 다른 팀간 소통도 자유롭다.

▲'클릭셰어'. 이를 통해 직원들은 서로의 화면을 공유할 수 있다. ⓒSR타임스
▲'클릭셰어'. 이를 통해 직원들은 서로의 화면을 공유할 수 있다. ⓒSR타임스

CBRE코리아는 직원에게 노트북과 함께 '클릭셰어'라는 장치를 제공한다. 구성원들은 이를 통해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의 화면을 공유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대면 회의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내에 마련된 미팅룸 하나를 잡아서 팀별 미팅을 진행할 수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직원 만족도는 매우 높다. CBRE코리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업무 공간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원들의 88%가 새로운 업무환경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경영진의 92%가 팀을 이끄는데 있어서 새로운 오피스가 매우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종이 사용량이 이전보다 90% 감소했고, 프린터기 관련 지출이 3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환경이 자유로운 대신 성과 평가는 철저하다. 일별·주기별로 모든 팀원에게 철저히 할 일과 성과 목표가 정해져 있다.

류혜연 마케팅팀 차장은 "개인별로 성과가 철저히 체크되기 때문에 출퇴근 확인이 없다고 해서 늘어지는 점은 없다"며 "오히려 책임감이 부여되고 자기 할 일이 명확한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 공간 재배치로 업무생산성 극대화

업무환경 전략팀은 새로운 공간 관리 전략 제시에 앞서 약 2~3개월에 걸쳐 사전 조사를 진행한다. 현재 회의실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어느 빈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등 공간 활용도 조사를 비롯해 임직원 개개인에 대한 온라인 설문으로 새로운 오피스의 규모나 회의실 수 등을 산출해낸다.

이후 단계에서는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업무방식의 문화, 비전, 환경 등을 제시한다. 현재 기업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인적자원이 구성되어야 하는지, 업무 방식은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 성과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등 계획 지원 보고서를 작성한다.

새로운 업무 환경에 대한 구성원들의 이해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교육도 진행한다. 새로운 업무환경에 대한 가이드나 사내 커뮤니케이션 지원, 관리자 워크숍 등을 통해 구성원이 최대한의 업무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적응을 유도하고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관리한다.

이처럼 CBRE코리아 업무환경 전략팀은 개별 기업에 적합한 업무환경 전략을 제공하고 새로운 업무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나 외국계회사부터 은행,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들에게 변화관리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김형주 CBRE코리아 업무환경 전략팀 부장 ⓒCBRE코리아
▲김형주 CBRE코리아 업무환경 전략팀 부장 ⓒCBRE코리아

김형주 부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기업에서도 유연 근무 등 새로운 업무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직원들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공간효율 등 세가지간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생겼다"며 "업무공간 전략은 이러한 새로운 환경 변화에 맞춘 공간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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