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성 대표
▲ⓒ장덕성 대표

[장덕성 대표의 공간 가치 창조] 새로운 길을 가다

 

‘임대료 부담 없고, 내실 있게 운영할 사람이 뭐가 있을까?’

나는 홍천의 여관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뒤 사업 구상에 몰두했다. 건물관리할 때 보고 들은 간접 경험이 아이템을 고민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카페 같은 경우 빛 좋은 개살구가 많았다. 특히, 강남에서는 돈 벌어 건물주에게 갖다 주는 경우가 많다. 임대료가 워낙 비싸니 말이다.

건물관리업을 할 때, 명도를 하며 집기를 모아둔 창고가 있었다. 책상, 의자가 있었고 책도 많았다. ‘이 비품을 활용해서 커피와 도서관을 접목한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건물관리해드렸던 인연으로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신 건물주가 계셨다. 어려워진 내 사정을 알고 본인 건물의 3층을 다 쓰라고 제안해주셨다. 물론 임대료는 내야 하지만 월 250만 원 임대료를 150만 원에 줄 테니 쓰라고 제안해주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재기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하시면서 말이다. 나는 감사드린다는 말을 연신 하며 해당 건물에서 새 출발을 시작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시작한 사업은 손님이 없어 매우 한가했다. 해당 건물은 석촌동 먹자골목의 외진 곳 3층이었는데,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이런 곳에 책과 커피의 조합이 썩 어울린다고 볼 수는 없기도 했다. 또한 워낙 공실로 오랫동안 있었던 곳이라 인적이 더욱 없었다. 그래도 기대의 끈은 놓지 않았다. 입지가 열악하지만 사업체를 차려놨으니 기대라도 하지 않으면 딱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그날 기대하는 손님 수를 기도하는 일과가 생겼다. 또한, 손님이 적다 보니 조언해주는 사항들은 바로바로 개선했다. “음악 소리는 좀 더 조용했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이렇게 하면 더 좋겠어요.” 등으로 손님들이 원하는 방향에 맞추다 보니 어느 순간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도서관 같은 분위기가 됐다.

커피랑도서관은 시간제 요금과 정액제 요금 두 가지로 운영했다. 한 시간에 1,500원(현재 2,000원)이지만, 정액권을 구입하면 4주 기준 15만 원(현재 16만 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나를 찾아온 친구는 정액권을 끊는다며 18만 원씩 2명 분, 36만 원을 줬다. 내가 정액권은 15만 원이라고 하자 18만 원인 줄 알고 왔으니 그렇게 받으라며 억지로 더 넣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어려운 사정을 들은 터라 일부러 더 낸 것이었다. 내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정액권을 끊는 방식으로 돈을 주고 간 것이다. 친구의 배려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잘 나가던 시절, 양복 주머니에 현찰을 꽂고 다닐 때는 밥 한 끼 값이었을지도 모를 36만 원이 내 삶에 이렇게 크게 와닿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석이 되길 기도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장난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록 손님이 3~4명만 간헐적으로 드나들 뿐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저녁 8시가 됐다. 나의 바람을 들은 터라 아내도 은근 기대를 하고 있었던 눈치였는데,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 돼버린 현실에 실망의 눈빛이 역력했다. 아내는 집에 들어가고 나만 남았다.

드르륵.

그때 살그머니 문이 열리며 여학생 두 명이 머리를 내밀었다.

“저, 여기서 공부해도 되나요?”

“네, 얼마든지요.”

“여기 몇 시까지예요?”

“11시 마감인데요.”

“아, 아쉽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12까지 해주면 어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대답했다. 공부하려는 학생들의 의지가 기특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한 학생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10여 분이나 지났을까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학생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또다시 대여섯 명이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덟 명이 또 들어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연이어 들어오는 학생 손님에 나는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다음 날 방사선과 관련 시험이 있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저녁식사 후 막바지 공부를 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던 중 마침 이곳을 발견하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나는 집으로 간 아내에게 얼른 전화를 했다.

“여기로 빨리 와줘!”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우선 빨리만 와줘. 와서 보면 놀랄 일이 있어!”

내 말에 아내는 서둘러 왔다. 많은 학생들을 보고 놀란 아내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내는 서둘러 앞치마를 두른 뒤 커피를 내렸고, 나는 고객들에게 커피를 나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체 손님이 휩쓸고 지나가자 주변에 점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딱히 홍보 마케팅을 펼친 것도 아닌데, 입소문은 무엇보다 강력한 홍보가 돼 고객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게 해줬다(이 일을 계기로 ‘입소문 마케팅’을 공부하게 됐다)

 

 
 

◆ 품격 있는 공간의 가치를 창조하는 장덕성 대표 약력

 - 경희대학교 경영학과/건축학과 졸업

 - 주식회사 랑코리아 대표 겸임

 - 커피랑도서관 대표

 - 커도공간연구소장 / 가구디자이너

 - 매일경제신문사 ‘커피랑도서관’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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