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어사 철수 후 1년 이상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 바이오산업 육성 강조하면서 고어사에만 '보편적 가치와 윤리' 강요할 수 있나?

[SR(에스알)타임스 우태영 편집위원]

요즘 의료계에서는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에 필요한 고어사의 인공혈관 문제로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어사가 2017년부터 인공혈관 공급을 중단해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11일 고어사가 20개의 인공혈관을 급히 한국에 보내 당장 수술해야 하는 심장병 어린이 6명을 치료할 수 있게 되다고 한다. 고어사의 인공혈관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진행을 파악하면서 3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한국 보건당국의 일방적인 의약품 가격책정의 문제이다.

고어사는 전세계에 인공혈관을 공급하는 유일한 제조회사이다. 고어사는 중국에는 인공혈관을 110만원, 미국에는 80만원에 각각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식약처는 이를 16만원에 공급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이 너무 싼 가격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을 살리는 의약품 가격을 책정하는데 뒷골목 시장통에서 골동품 장사꾼들 물건값 흥정하듯 가격을 후려친 느낌이다.

고어사의 입장에서는 인공혈관을 만드는데 개발비도 상당히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16 만원에 공급하면 중국과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대한 공급가격도 대폭 인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한국에 심장병 어린이들이 다수 존재하고 매년 발생하는 데 인공혈관의 유일한 공급자인 고어사가 철수하는 것을 그냥 놔둔 건 또 무슨 배짱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문제가 최악의 상황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대책이 없다.

2017년 9월 고어사가 철수한 이후에도 국내 병원에서는 재고로 비축해 두었던 인혈관으로 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건당국이라면 당연히 국내에 인공혈관이 재고가 몇 개 있고, 매년 환자가 몇 명 발생하는지 통계를 뽑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면 인공혈관 재고가 몇 개이고, 수술이 몇 건이고, 환자가 몇 명이므로 언제 재고가 바닥이 나는지 담박 알 수 있다. 100-50=50. 50-50=0와 같은 계산만 하면 된다. 언제까지 인공혈관을 확보해야 심장병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인공혈관이 품절되기 전에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세금받아 사는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 공무원들은 인공혈관 재고가 바닥이 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아무일도 하지 않은 것 같다.

1년 이상 시간이 있었는데도 수술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국내외에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11일에야 긴급히 20개를 공수받아 수술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군대로 치면 적군의 대공세 날짜까지 알고 있으면서 의도적으로 대비하지 않은 꼴이다. 이해 불가이다.

 

셋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투쟁선언이다.

박 장관은 11일 소아용 인공혈관을 독점 생산하는 미 고어사(社)가 국내 제품 공급을 중단한 문제와 관련해 "다가오는 5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정식 어젠다(안건)로 제기해 논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고어사의 인공혈관문제를 다국적기업의 횡포로 인식하는 듯 하다. 그는 "다국적 제약회사 내지는 의료기기사들이 독점공급을 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 여러가지 독과점 횡포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국적사 독점 횡포는 한 국가의 힘으로 대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우선 인류의 건강행복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의 이러한 시각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박 장관은 WHO를 통해 다른 나라들과 연대해 고어사라는 “다국적 사의 횡포’에 대응해 나갈 생각인 듯 하다. 그런데 WHO가 특정 제약회사에 대해 어떤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기관인지는 의심스럽다. WHO보다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하는게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둘째,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고어사의 인공혈관은 고어사의 특허제품이다. 많는 노력을 들여 만들어낸 제품이다. 이른바 기술혁신을 통해 얻은 성과이다. 기술혁신은 우리나라 기업들도 추구한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을 추진하는 이유도 기술혁신으로 신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놓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도 바이오 산업의 육성을 강조한다. 바이오산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고어사의 인공혈관은 혁신적인 바이오제품이다.

만약 우리나라 기업들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혁신적인 바이오 제품을 만들에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 할 때 박 장관은 고어 사에게 했듯이 “인류의 건강행복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 못할 것이다.

 

아뭏튼 고어사의 인공혈관 사태를 지켜보면 해당 공무원들 가운데 자기 가족이 심장병 환자가 있어도 이런 식으로 무심하게 대책없이 일을 처리했을까 하는 씁슬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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