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 시선(Selected Poems of John Donne)

존 던(John Donne) 지음 | 김영남 옮김 | 영국,시 | 지식을만드는지식 펴냄│254쪽│21,000원

 

 

[SR(에스알)타임스 장의식 기자] 존 던(John Donne, 1572∼1631)은 영국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른바 '형이상학파'의 대표적 시인이다. 동시에 종교시, 명상록, 설교 등으로 국교에 헌신한 성공회 사제이기도 했다.

그는 문학을 전업으로 삼은 작가는 아니었지만 남긴 시와 산문들은 그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밀턴 사이에 활동한 가장 특별하고 영향력 있는 시인으로 남게 했다.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1세, 찰스 1세 등 세 군주의 치하에 걸쳐 살았으며, 성직자로서 헌신한 후반기 경력은 제임스 1세 및 찰스 1세 국왕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초기 근대에 걸치는 매우 폭넓은 시대적 배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글을 매우 풍부하고 심오하게 만들어 주었다.

존 던은 기발한 비유와 논리적인 구조로 통합된 감수성을 표현해 냈다. 전통적인 사상과 형식만으로는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본질을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형이상학파’ 시인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는 그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도록 애정시와 종교시를 함께 소개한다.

시인으로서 던은 전통적인 사상과 형식을 배격하고 자신만의 새롭고 독특한 특징을 가진 시를 씀으로써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다. 그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는 엘리자베스 시대적이었다. 또한 ‘컨시트(conceit)’라고 부르는 재치 있고 기발한 비유들은 앞선 여러 소네트 시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던은 이들의 감미롭게 사랑과 자연을 예찬하는 노래나 고전적이고 목가적인 전통을 답습하는 서정시에 고의로 반발했다.

그는 특히 인간의 본성과 사랑에 대해 그들이 보여 주는 과장하고 이상화한 태도를 반대하고 조소했다. 그 대신 심리적 사실주의와 지적인 복잡성 같은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작품에 투영했다. 그래서 연애시에서 한숨지으며 그리워하고, 기뻐하거나 절망하는 사랑의 감정을 과장해 노래하는 서정시를 배격하거나 풍자하고, 그 대신 실제로 연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애정의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들에 사실적이며 지적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그의 화자들은 종종 연인의 태도나 행동을 냉소적으로 비웃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는 애인을 논쟁을 통해 설득하거나 반박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에게 여성은 더 이상 페트라르카 풍의 소네트에서처럼 여신과 같이 이상화되지 않으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성에 대한 욕망을 가진 평범한 인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에게 사랑의 본질은 남녀 간에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이 조화롭게 일치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인생이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난해한 것이며 사실주의에 입각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단순화하는 전통적인 시들의 입장은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시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다.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던의 작품은 종교시와 묵상, 설교 등의 산문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신앙적 성찰을 담은 19편의 소네트가 유명한데 이들은 흔히 ‘거룩한 소네트(Holy Sonnets)’란 제하에 일괄적으로 소개되어 왔다.

이 소네트들은 대부분 그가 성공회 사제로 서품되기 전인 1609년부터 썼으며 죽은 지 2년 뒤인 1633년에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특이하게도 소네트 형식을 종교시에만 적용했다. 이는 16세기 소네트 시인들이 주로 연애시를 쓰기 위해 소네트 형식을 사용했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 소네트들은 대체로 죄, 죽음, 구원과 같은 무거운 신앙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에 직면한 자신의 실존적 상황 앞에 두려워 떨며 신의 은총과 자비를 구하는 던의 내면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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