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양육 여부 사회통념 적용 폭넓은 가능성 열어

▲육아휴직 부정수급과 관련한 재판에서 육아 여부에 대해 사회통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사진=pixabay)
▲육아휴직 부정수급과 관련한 재판에서 육아 여부에 대해 사회통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사진=pixabay)

[SR타임스 최헌규 기자] 육아휴직 부정수급과  관련한 재판에서 육아 여부에 대해 사회통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가 동거를 하지 않고 조부모가 양육을 해도 양육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8월 23일 ‘아이와 동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육아휴직 급여를 수령한 것이 부정수급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대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서울고법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당시 9월부터 육아휴직 급여가 인상된다는 정책이 발표되는 시기와 맞물리며 이 판결은 더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여론 중에는 ‘육아도 안하고 외국에 나가 살면서 무슨 육아휴직 급여를 받느냐’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이에 소송을 대리해준 서울시복지재단 내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이하 ‘공익법센터’)가 ‘판결 설명자료’를 통해 잘못 된 정보 바로잡기에 나섰다.

센터 설명에 따르면 일부의 지적처럼 당사자가 육아를 내팽긴 채 외국에 나간 것이 아니었다. 적극적인 육아 의지에도 불구하고 형편 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였다.

2011년 1월 딸을 출산한 정 모 씨는 같은 해 4월, 다니던 A업체에 1년간 육아휴직을 냈다. 산재로 장애를 얻고 실직 중인 남편의 구직을 위해 A업체 사장의 소개로 남편, 딸과 함께 멕시코로 가기 위해 3명의 항공권을 예약하고 딸 이름으로 여권도 발급받았다. 그러나 출국 직전 급성 비인두염으로 딸의 건강이 악화되자 정씨는 딸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멕시코로 출국해 이듬해 2월 귀국한 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난 4월 회사에서 퇴직했다.

정 씨는 육아휴직기간 1년 동안 매월 81만6000원 씩, 총 979만 여 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받았다. 고용노동청은 그로부터 1년 뒤 “정씨가 육아휴직 급여 수령 중 자녀를 양육하지 않고 해외에 체류했다”며 멕시코로 출국한 6월부터 8개월여 간 받은 육아휴직 급여 807만 원을 반환토록 하고 같은 액수를 추가 징수한다고 처분했다.

이에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억울함을 호소해 온 정 씨 사연을 접하고 관련 검토 끝에 법률소송을 무료로 지원하게 됐다. 불가피한 이유로 자녀와 따로 살고 있는 엄마가 수령한 육아휴직 급여가 부정수급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확신에서였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의 결론은 달랐다. 1심에서는 부모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이와 동거하지 않더라도 가족을 통해 아이를 길렀으면 육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받기 위한 육아휴직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양육하는 영유아와 동거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부모는 자녀의 양육에 적합한 방식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자녀와의 동거 이외에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육아휴직 대상인 자녀를 양육한 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며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에 따라 불명확한 법 규정과 행정청(고용노동부)의 부족한 안내로 인해 육아휴직 급여와 급여의 두 배에 달하는 추가징수액 1600여만 원을 반환해야 했던 원고 부부는 지급의무를 면하게 됐다.

이 사건을 담당한 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는 “자칫 아이와의 동거를 등한시 할 위험성을 고려해서인지 대법원에서 양육과 동거의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고용보험법에 육아휴직 급여 신청과 종료 등의 요건 규정이 미비한 점, 고용노동부의 육아휴직 급여 절차 안내에 있어 홈페이지 등에 관련 정보가 부족한 점을 대법원에서 확인해 준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 “원고는 1600여만 원의 돈보다 자신이 부정수급자로 몰린 것을 제일 억울해 했는데 자녀에게 떳떳한 엄마가 된 것을 가장 기뻐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공익법센터는 이번 판결 선고 직후 일부 언론에서 판결의 해석을 정반대로 하거나 인터넷 상에서 사실관계를 모른 채 원고를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됐던 점을 우려해, 이번 사건의 소송대리인으로서 판결의 정확한 의미와 당시 원고의 사정을 ‘판결 설명자료’로 공개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복지소외계층시민의 권리행사를 돕고 소송 등 법률구제까지 지원하는 기관으로 서울시복지재단 내에 설립 돼 운영 중이다.

▶ (참고)공익법센터에서 공개한 판결 설명자료

쟁점1: 자녀와 동거하지 않은 채 육아휴직 급여를 수령한다?

1심은 구체적 타당성 측면에서 실질적인 양육이 이뤄졌는지를 중시했고, 2심은 그럴 경우 육아휴직 급여 부당수급 행위를 막기 어렵다는 측면을 중시했다.

1심 부모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이와 동거하지 않더라도 가족을 통해 아이를 길렀으면 육아로 볼 수 있음

2심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받기 위한 육아휴직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양육하는 영유아와 동거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함

이에 대해 대법원은 “부모는 자녀의 양육에 적합한 방식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자녀와의 동거 이외에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육아휴직 대상인 자녀를 양육한 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다만 본 사건의 경우 육아휴직 급여 수급 요건을 충족했다고 할 수 없지만, 원고가 수급 요건을 상실하게 되는 시점에 관하여는 판단을 유보했다.

쟁점2: 부정수급의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종전에는 부정수급을 ‘수급자격이 없는 사람이 수급자격을 가장하거나 자격 종료 사유 발생 등을 감추기 위하여 행하는 일체의 부정행위’라고 폭넓게 봤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은 단순히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에도 급여를 수령한 경우만으로는 부족하고, ‘허위, 기만, 은폐 등 사회통념상 부정이라고 인정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라고 부정수급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대법원은 또 이번 사건의 경우 원고가 처음부터 명백하게 자녀를 양육할 의사가 전혀 없이 오직 해외출국을 목적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원고를 부정수급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당시 원고의 상태를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취업문제가 빨리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애가 있는 남편만 타지에 두고 귀국하기가 어려워 귀국을 지연하다가 체류기간이 길어진 것이지 처음부터 장기 체류를 예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의미

이번 사건이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은 고용보험법에서 육아휴직 급여의 요건을 독립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성격이 다른 남녀고용평등법을 준용하는 애매한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회보장 급여가 개인의 권리 측면보다는 정치적 배경과 재원·예산 현황에 좌우되면서 근거 규정의 법적 정치성이 떨어지는 현상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규정의 모호함으로 인해 나중에 부정수급 여부가 문제될 경우, 급여를 받은 일반국민에게 부정수급자라는 불명예와 함께 이로 인한 불이익을 손쉽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피고(서울지방고용노동청) 역시 동거 등 양육형태와 무관하게 육아휴직 급여를 지급했다가 1년 뒤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나서 부정수급 처분했다. 이는 종전 대법원에서 부정수급을 ‘일체의 부정행위’라고 폭넓게 보았기 때문인데, 이번 판결에서 부정수급자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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