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원서에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을 적지 않고, 또 그것들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블라인드’란 이름을 붙였다.

학력과 집안, 지역과 외모로 취업이, 나아가 신분까지 결정되곤 하는 우리사회 병폐를 없애기 위한 방식이다. 지방대학이나 이류대학을 나오면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선보일 기회조차 아예 없는 세상.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0%이상이 우리나라는 출신 대학에 따라 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학력차별은 당연히 빈익빈 부익부로 이어지고, 교육과 대학을 서열화 해버린다. 부모들이 굶으면서, 시간제 일을 하면서 자식들 일류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도 망가지고, 교육도 망가지고, 사회도 망가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올 하반기에 공공부분 전체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전격 지시하면서 민간기업으로까지 확산을 희망했다. 문 대통령은 “명문대 출신이나 일반대 출신이나,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이나 똑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모든 국가공무원과 공공기관 채용 시험의 입사지원서를 통일하고, 서류전형과 면접 과정에서 블라인드 방식을 어떻게 적용할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블라인드 방식은 이미 대학입시 면접이나 실기시험에서, 그리고 일부 공무원과 공공기관 채용에서 시행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지난해까지 229개 기관이 국가직무능력표준(NCS)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현장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체계화해 불필요한 ‘스펙’ 나열을 피하고 있다. 원서에 직무와 관련이 없는 학력, 신체조건, 가족사항 등의 개인 신상정보를 이력서에 기재할 수 없으며, 면접 채점자에게 응시자의 학력, 필기시험 성적, 나이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

일부 대기업에서도 업무능력과 창의성, 잠재능력 만으로 채용을 하는 ‘탈 스펙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심심하면 불거져 나오는 소위 지도층 자제들의 인사 청탁과 편법 채용 추문들을 보면 모든 제도가 그렇듯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눈 감고 야옹’이 되지 않으려면 지연, 학연, 혈연, 권력을 무기로 부탁하는 사람도, 눈치보고 청탁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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