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관중이 없다면. 한번 상상해보라. 관중 한 명 없이, 설령 있더라도 응원 없이 치러지는 스포츠 경기를. 실제로 축구 경기장 폭력으로 북한에서 관중 없이 월드컵 예선이 열린 적이 있다. 중동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텅 빈 관중석, 그때 모습을 보면 마치 진공 속에서 경기를 펼치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고 박진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포츠의 3대 요소를 선수, 경기장, 관중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감독도 중요하고 심판과 경기 규칙도 중요하다. 그러나 관중석이 텅 비고 응원 없이 경기장에서 선수들끼리만 경기를 치른다면 아무리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승부라 도 ‘그들만의 리그’로 흥도 안 나고 맥이 빠질 것이다.

더구나 프로스포츠는 팬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팀을 응원하고 선수들과 함께할 때 경기가 살아나고 선수들도 신이 난다. 거꾸로 스포츠가 없으면 당연히 관중도 없다.

스포츠와 관중은, 선수와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어느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존재하거나 성장할 수 없다. 좋은 응원문화가 경기장의 분위기와 선수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그것이 수준 높은 경기로 이어져 관중을 더 불러 모은다.

얼마 전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재미있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6년 9월부터 11월까지 국내 프로 스포츠 4대 종목인 축구, 야구, 남녀 농구와 배구의 62개 구단 관람객 26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2016 프로 스포츠 관람객 성향 조사’였다.

조사결과, 관람객이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만족을 느끼는 것은‘응원’이었다. 10대 요인별 만족도 조사에서 ‘팀 응원문화’는 100점 만점에 68.9점을 기록했다. 이는 구단 직원의 친절(65점), 경기장 접근성(64.4점), 이벤트(63.4점)보다 높고, 전체 평균보다 무려 8.1점이 많았다.

특히 프로야구에서 응원문화 만족도가 높았다. 73.3점으로 남자 농구(66.9점), 축구(66.6점), 배구(65.9점)를 크게 앞질렀다. 해마다 인기를 거듭해 2016년 국내 프로 스포츠로는 사상 최초로 관중 800만을 돌파한 인기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35년의 역사를 자랑하듯 팬들의 평균 응원기간 역시 프로야구는 7.9년으로 2위인 축구보다 무려 2.8년이나 더 길었다.

경기장을 찾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당연이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려는‘응원하는 팀의 경기력’(16.8%)에 있지만, ‘경기장 현장 분위기’(12.9%) 그 자체도 못지않다. 팀의 성적, 좋아하는 선수를 보는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치어리더의 화려한 율동과 응원단장의 호쾌한 구호, 응원가에 맞춰 다채롭게 펼쳐지는 단체응원, 다양한 응원도구와 유니폼 패션 등이 프로야구 관람을 더욱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관중석을 남성이 독점하던 시대도 이미 지나갔다. 여자 선수가 뛰거나, 유난히 여성 팬이 많은 남자 선수가 뛰는 배구와 농구는 말할 것도 없고 야구 관중도 42.9%가 여성이다. 여성 팬이 가장 적은 축구도 29.2%나 된다. 프로야구 두산은 이미 여성 관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그들은 선수와 하나가 되어 순간순간 펼쳐지는 승부의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긴장과 이완이 출렁거리는 경기장 특유의 분위기를 즐긴다.

단순히 승부에 집착하거나 자기 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만 맹목적으로 응원하고, 스포츠맨십까지 저버리면서 이기기만 하려는 팀이나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수와 패배에도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내고, 상대 팀의 멋진 승리도 기꺼이 축하해주는 미덕과 아량을 가지고 있다우리가 말하는 수준 높은 관중, 성숙한 응원문화다.

이런 관중들의 모습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프로야구도 그랬다. 창단 초기에는 지역 연고팀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승부욕에 집착한 나머지 폭력과 욕설, 집단행동으로 경기장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고, 원정 팀 선수들을 불안에 떨게 하기도 했다. 야구뿐만이 아니었다. 축구도, 심지어 올림픽 경기에서도 그랬다. 구단과 선수들도 오로지 성적지상주의에 매달려 이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팀, 나아가 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구단과 선수, 관중이 함께 깨닫게 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그래서 구단은 보다 다양하고 즐거운 팬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팬들 역시 경기 자체를 축제로 즐김으로써 삶의 활력소로 만들 줄 알게 됐다. 그 속에서 오로지 1등이나 승리만을 원하고, 그런 결과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포츠의 본래 정신과 의미, 그리고 승리보다 값진 것들을 발견하고 느끼는 눈과 가슴,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스포츠의 사회적 존재 가치일 것이다. 대기업들이 프로 스포츠팀을 창단해 운영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건 궁극적인 사회적 공헌의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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