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상상으로 그럴듯한 영웅을 만들어내도 잠시일 뿐, 허망하다.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불러내도 지금의 세상을 바꾸거나 구할 수는 없다.

새 대통령이 나온다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희망을 포기하고, 사회는 이념과 세대 갈등으로 찢어질대로 찢어지고, 빈부양극화로 살기는 점점 힘들고 화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거짓과 부정과 비리가 암세포처럼 자라고 있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달라질까.  대선 후보들 모두 통합과 화합, 치유와 정의, 공평한 기회와 희망을 외치고 있지만 솔직히 기대하지 않는 국민들이 더 많다. 언제는 안 그랬나.  영웅을 자처해 놓고는 막상 권력을 잡으니까,  영웅은커녕 범부만도 못한 꼴이나 보인 것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존재하지도 않는, 살아있지도 않은 영웅을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 차라리 특출한 능력이나 재능도 없지만 살아있는 평범한 인간에게 기대를 걸어보자. 나부터 한번 나서서 불의와 부패에 맞서보는 것은 어떨까. 혼자 안 되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얼마 전에 끝난 인기 드라마 <김과장>의 주인공 김성룡 과장처럼.

일개 경리과장이 거대 자본권력과 그에 빌붙어 괴물이 된 인간들에게 맞서 싸운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정말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어쩌면 <김과장>이야말로 허구의 영웅들, 역사에서 부활한 영웅들의 이야기보다 더 황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더구나 그가 맞선 세상은 허구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현실’이다.

분식회계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것을 들춰내려는 내부 고발자를 탄압하고, 젊은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착취하는 대기업.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그것을 눈감아 주거나 도와주는 검찰. 탐욕에 사로잡혀 법과 정의를 팽개쳐버린 채 거짓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권력자들.

이런 세상에서 힘없는 일개 과장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러나 김성룡은 포기하지 않고, 때론 좌충우돌하면서 싸웠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언젠가는 계란이 그 바위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이런 김 과장에게 우리는 빠져들었고, 마음을 함께 했고, 박수를 보냈다. 슈퍼히어로에게서 느꼈던 단순한 카타르시스가 아니다. 이제는 얼마든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촛불을 들면서,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용감한 내부고발자를 통해 경험하고 확인했다.

드라마 <김과장>의 인기와 공감은 아이러니하게도‘반(反) 영웅주의’에 있었다. 그동안 지나치게 영웅에게 의지하려 했던 어리석음의 반복에 대한 반성, 영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모두의 양심과 용기 속에 있다는 자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우리에게 영웅은 필요 없다. 스스로 얼마든지 세상을 바꾸고,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운다. 너와 내가 영웅이고, 김 과장이다. 이제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김 과장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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