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책 표지. ⓒ SR타임스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책 표지. ⓒ SR타임스

[SR타임스 이대현 주필] 인터넷이 생활화된 요즘을 ‘검색’ 만 있고 ‘사색’ 은 없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사색’ 은 독서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도 독서를 통해 좀 더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지난해 국민독서문화 확산을 위한 어느 라디오 캠페인에서 들은 이야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에 한번씩 국민독서 실태조사를 한다. 2015년 우리나라 성인 한 명이 읽은 책은 9.1권이다.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평균 독서시간도 평일 기준 23분으로 5년 사이에 8분이나 짧아졌다. 그나마 성인의 3분의1은 몇 년째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와 올해는 더 적을 것이다. 연말에 터진 전대미문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모든 국민이 빠져들었으니. 그 어떤 소설보다 더 기막히고, 상상력을 초월하는 일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데 누가 책을 읽겠는가. 올해에 대선이라도 치러지면 역시 책은 멀어질 것이다.

아이들도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을까. 아니 정반대다. 2015년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성인의 3배가 넘는 평균 29.8권을 읽었다.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니다. 초등학생은 무려 70.3권이다. 1년에 도서관에서만 30권 이상의 책을 빌려 읽는다는 일본 초등학생 못지않은 독서열이다. 그런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4분의1 가까이(19.4권), 고등학생이 되면 다시 그 절반 이하(8.9권)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책과 담을 쌓아버린다.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절반 가까이(47.5%)가 ‘시간 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47.5%)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간과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이들은 책을 읽을까. 십중팔구는 아니다. 인터넷이나 게임, TV 시청은 한가할 때만 하나.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열심이고, 야근으로 피곤하다면서 밤도 새운다. 여가활동에서도 독서는 TV와 인터넷은 물론 운동, 모임, 집안일보다도 나중이다.

평소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 시간이 있다고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읽지는 않는다. 골치가 아프다며, 졸린다, 재미없다며 던져버린다. 독서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오락이 아니다. 미국 문학평론가인 조지 스타이너의 말처럼 독서는 “침묵, 집중과 기억의 아름다움” 을 동반한다. 그것을 통해 다른 세상, 사고와 사색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준다.

해마다 독서자들의 평균 독서량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이유도 그들은 그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에도 2년 전보다 1.1권이 늘어 14권이 됐다. 책도 읽을 줄 아는 사람만 읽는다는 얘기다.

독서를 않은 사람들의 또 다른 이유. ‘책이 싫고, 몸에 배지 않아서’(23.2%)이다. 싫다는 것은 지겹고 재미없다는 얘기다. 억지 춘향으로 가능했다면 초등학교 때 그렇게 많은 독서량, 학교에서의 ‘아침 독서’ 와 논술로 다져진 책 읽기 습관은 어디로 갔나. 습관은 재미에서 나온다. 하루아침의 결심으로 생기지 않는다. 즐거움의 반복이다.

그러니 재미있는 책부터 읽어야 한다. 삶과 세상에 대한 진리, 창의적 사고나 자유로운 감성과 상상력은 고전이나 명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화라고 아예 책 취급도 안하는 것은 독선이고 편견이다. 만화에도 일본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같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작품이 얼마든지 있다. 처음에는 감각적 재미로 책을 선택하고 읽지만, 차츰 관심과 재미의 폭도 넓어진다.

독서는 또 전염된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열에 아홉은 모바일 폰에 빠져있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남녀노소가 없다. 경로석에 앉은 80대 노인들 손에도 스마트 폰이다. 그런 지하철에서 한번 책을 펼쳐서 읽어보라.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또 책을 꺼내 읽는다. 아직도 일본의 지하철에서는 책 읽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이같은 ‘독서심리효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퇴근 후에, 집안 일 끝내고, 휴일에,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TV만 보면서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소리 지르는 부모는 바보다. 나부터 컴퓨터와 TV 끄고 말 없이 책을 읽으면 된다. 장담컨대 유아는 3일, 초등학생은 일주일, 중학생은 한 달이면 슬그머니 따라한다. 아이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소통이 안 된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독서가 자연스럽게 통로가 되어 준다.

고령화 사회이다. 좋든, 싫든 이제는 100세까지 살아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이다.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독서야말로 정신의 보약이다.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 국가경쟁력이기도 하다. 나의 내면과의 대화이고, 세상과의 대화이며, 수많은 현인과 작가와의 대화인 독서가 없다면 노년의 삶이 얼마나 쓸쓸하고, 허무할까. 어쩔 수 없이 혼자 보내야 할 긴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루 종일 멍하니 TV만 보고 있을 텐가, 누워만 있을 텐가.

지금부터라도 나이에 맞춘 ‘100세 독서 버킷리스트’를 꼼꼼히 만들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1001>처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하면 되겠지’ 하고 미루면 영원히 독서습관은 내게서 멀어진다. 책 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힘들다고? 핑계다. 1년에 70권의 책을 읽는 초등학생들도 7권만 직접 산다. 눈을 돌리면 10분 거리에 온갖 책 빌려주고, 이 겨울 따뜻하고 편안하게 책 읽을 수 있는 크고 작은,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공공도서관이 널려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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