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 SR타임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 SR타임스

때 이른 정치의 계절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가져온 대통령 탄핵정국이 가져온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탄핵 이후 상황을 위해 이미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시작했고, 다음 대권에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심한 정치에 실망하고 분노한 국민들에게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열러줄 것처럼 자신의 정치철학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때론 어떤 사람이 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이 장황한 연설보다 뒤통수를 ‘탁’칠 때가 있다. 위대한 철학자도, 뛰어난 지도자가 아닌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 그것이 우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어떤 계산이나 자기과시가 아닌 진실이 배여 있기 때문이다.

때론 장황한 이론, 미사여구 가득한 주장이 오히려 공허하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작가인 호르세 루이스 보르헤스도 “방대한 양의 책을 쓴다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 나간 짓이다. 단 몇 분에 걸쳐 말로 완벽하게 표현해 보일 수 있는 어떤 생각을 500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는 짓”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의 말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귀가 둘인 것도 내 주장(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남의 말을 더 많이 들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가난하고, 나이가 어리고, 못 배우고, 도시가 아닌 산골에 사는 사람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착각이자 오만이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의 외침이 아닌, 대수롭지 않게 흘러버리는 인물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서 삶의 진리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영화는 전혀 다른 의미를 준다.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영화를 보는 초점과 영화 속에서 관심을 두는 대상도 달라지진다. 지금 대권을 위해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려는 이들의 모습의 보면서 10년 전 보았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다시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마지막 남북한의 군인들이 한마음이 되어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것에서 어느 편도 승자이지 못한 전쟁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영화가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판타지처럼 펼쳐지는 동막골에서의 삶의 이야기다.

동막골에는 미움이란 없다. 남을 시기하거나 무시하거나 질투하지도 않는다. 누가 억지로 통제하거나 억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함께 일해서 마을 전체의 식량을 준비하고,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나갑니다. 모두 평등하다. 문명과 단절돼 있지만, 조금도 불편해 하거나 마을을 싫어하지 않는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포스터. ⓒ SR타임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포스터. ⓒ SR타임스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촌장 역시 나이가 제일 많은 것 빼고는 특별할 것도 없다. 그게 신기해 인민군 장교 리수화(정재영)가 촌장에게 묻는다. “이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의 불만도 없이 이끌어갈 수 있는 영도력이 뭐냐”고.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잘사는 지상낙원을 이루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불행으로 내몬 북한의 현실을 아는 그로서는 당연히 궁금하다. 대단한 비결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리수화에게 촌장님이 강원도 사투리로 해준 한마디는 너무나 평범해 오히려 맥이 빠질 정도이다. “영도력의 비결? 글쎄. 머를 마이 멕이지, 머.”

이 영화가 나온 이후 선거때마다 가끔 언급된 이 한마디야말로 수천마디 설명보다, 수 백가지 정책, 지도자의 조건보다 날카롭다. 촌장의 왜 이 말 한마디로 끝냈을까. 워낙 가난해서 먹을 것만 충분해도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기 때문에? 아니면 문명과 차단돼 있어 먹는 것 말고는 달리 비교나 차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어서? 아니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준비하고 모으고 필요에 따라 평등하게 사용하는 원시공산사회 같은 곳이기에?

이런 저런 분석이 어설프다. ‘배불리 먹인다’ 에는 수 많은 정책과 자세와 사상과 태도가 스며있다. 그것을 위해 지도자는 어떻게 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은 각자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노력하고 쓰고 나누고, 각자의 불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그 제도와 방법이 무엇이든 한 사람도 배고프지 않게 골고루 배불리 먹이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게 지도자의 할 일이란 것이다.

맹자도 양나라 혜왕이 좋은 왕(지도자)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밝은 임금은 백성들의 살림을 만들어 주어서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족할 만하며,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들을 기를 만하여 풍년에는 늘 배부르고, 흉년이라도 굶주려 죽는 것을 피하니 그런 후에 백성들을 선한 데로 가게 하면 백성들을 따르게 하기가 쉽습니다”라고.

중국고대 요나라 ‘격양가’에서 보듯, 좋은 정치란 백성들이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어, 임금조차 누군지 신경 쓰지 않게 해주는 것. 여기에는 사상이나 민족이나 시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모두를 배불리 먹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인간들의 물질적 욕심과 이기주의는 점점 커지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부의 양극화로 계층간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청년실업으로 젊은이들의 미래가 없고, 노인빈곤층의 증가로 정말 먹고살기조차 힘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를 극복하고 골고루 누구나 배부른 세상을 만들자면 지도자들부터 나눔의 덕을 배우고 가져야 한다. 동막골 촌장의 ‘배불리 먹이기’도 식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지혜롭고 인자한 태도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한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말과 달콤한 정책보다 지극히 당연한 한마디를 진실하게 실천하는 지도자. 어디 그런 정치인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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