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N화면 캡쳐 ⓒ SR타임스
▲ MBN화면 캡쳐 ⓒ SR타임스

우리 문화가 중병을 앓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창조융합벨트니 뭐니 하며 문화의 융성을 떠들썩하게 외쳤지만 돌아온 것은 문화의 죽음 뿐이다. 우리는 지금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부끄러운 논란을 거듭하며 문화를 장송하고 있다. 대명천지에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멀쩡한 사람을 ‘불온분자’로 낙인찍어 사상검증을 하겠다니 시대를 거꾸로 사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신(新) 유신’에의 향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화는 모름지기 시대와의 불화, 불온한 상상 속에 발전하고 꽃을 피우는 것이라는 건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누가 문화를 창조하고 흥성하게 할 수 있는가. 미국의 사회학자 폴 레이와 심리학자 셰리 루스 앤더슨 부부가 ‘세상을 바꾸는 문화 창조자들’이라는 책에서 밝혔듯 ‘문화 창조자’는 사회적 지위보다는 자기실현, 외부의 평가보다는 내적인 성장, 물질적인 만족보다는 창조적이고 정신적인 경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달리 말하면 건강과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로하스(LOHAS)족’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미국 사회는 규범, 질서, 권위를 존중하는 전통주의자와 물질적 가치, 성장, 기술 진보를 우선시하는 현대주의자들이 극단적인 대결구도를 이뤄왔는데, 이런 두 문화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대안문화를 키워온 사람들이 바로 문화 창조자라고 말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대표적인 문화 창조자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마틴 루터 킹 목사,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퓰리처상 수상작가 애니 딜라드, 미국 여배우 캐서린 헵번 등이다.

 

▲ SBS 화면 캡처 ⓒ SR타임스
▲ SBS 화면 캡처 ⓒ SR타임스

이 같은 담론은 물론 이상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문화의 기본을 애써 무시하는 우리로서는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창조경제, 문화융성이라는 미명 아래 문화계의 우이(牛耳)를 잡고 흔든 세력이 누구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국정 농단의 주범들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문화 창조자의 덕목과는 정반대의 길을 간 사람들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두 문화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대안문화의 비전을 찾는 ‘고상한’ 작업은 고사하고 ‘결과보다 과정 중시’라는 문화 창조자로서의 최소 요건만 지켰어도 우리 문화계가 이토록 쑥대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화융성’을 4대 국정지표의 하나로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다. 하지만 문화의 이름으로 문화를 죽이는 참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블랙리스트 사건만이라도 제대로 밝혀내 더 이상 역사의 퇴행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합작품”이라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특별검사팀의 책무가 막중하다. 블랙리스트의 작성 주체가 어디인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관여했는지 여부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조 장관은 “문화예술가, 자연인 조윤선으로서 평생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누명을 쓰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진짜 억울하고 괴로워해야 할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문명국으로서의 수치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국민이다. 세상을 바꾸는 문화 창조자는 숨죽이고 세상을 망치는 문화 파괴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 그것을 끝장내는 것도 결국 애먼 국민 몫이니 그들이 무슨 죄인가.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