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 전쟁 같은 일상으로 직조해낸 가장 현실적인 공포의 연속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벽녘 침실에는 깊은 잠에 빠진 ‘쥘리’(로르 칼라미)의 숨소리만이 들린다. 알람이 울린다. 상쾌한 아침은 결코 아니다. 쥘리의 하루는 매일 숨 가쁘게 시작된다.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 이웃집 보모에게 맡기고는 통근 기차를 놓칠세라 힘껏 달리기 시작한다. 

쥘리는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에 산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그녀의 직장은 파리 시내에 있는 고급 5성 호텔. 그곳 객실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는 쥘리가 직장 근처로 이사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 시내의 닭장 같은 거주 환경보다 더 좋은 곳에 살 돈이 없어서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그녀의 삶은 매우 빠듯한 상황에 놓여있다. 은행에서 매번 독촉 전화가 오지만,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난 지 오래다. 신용카드 역시 언제 정지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거기다 양육비를 보내주지 않는 전 남편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심지어 기차와 지하철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교통 대란이 일어나 아무리 일찍 집을 나서도 출근 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 없다. 별을 보고 출근해서 다시 별을 보며 퇴근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쥘리가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였다. 이제 쥘리는 아이들 맡길 곳도 새로 찾아야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 차는 고장 나고 카풀에 히치하이크까지 하며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출퇴근 전쟁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그런 쥘리에게는 좀 더 나은 급여와 삶의 환경이 당장 절실했다. 상사 몰래 원하는 직장면접을 보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황은 점점 더 악화일로에 놓인다. 자존심을 버려가며 힘겹게 버텨온 일상의 무너짐이 마침내 눈앞으로 다가오자 숨 막힐 듯한 공포가 점점 쥘리를 죄어오기 시작한다.

영화 ‘풀타임’은 평범한 싱글맘의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누구나 삶에서 막다른 벼랑 끝에 내몰린 경험이 있다면, 이 영화가 구축해내는 강렬한 현실감에서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결혼과 이혼을 겪고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그녀의 일상에는 조금의 여유도 없다. 그래서 오프닝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삽입된 적막 속의 숨소리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어지는 정신없는 복닥거림은 쥘리가 겪는 현실적인 스트레스를 관객이 그대로 체감할 수 있게 한다. 

이에 대해 에리크 그라벨 감독은 “그것은 폭풍 전, 고요의 순간”이라며 “그녀가 배터리를 충전하는 유일한, 잠깐뿐인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그 이후 그녀에겐 휴식이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 스릴러 영화에서는 단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고, 폭발이 임박한 시한폭탄도 등장하지 않으며, 공황에 빠져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극도의 긴장감이 시종일관 유지된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때때로 빌런은 직장 상사와 동료이며, 최대의 적은 실수투성이의 자기 자신과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육아와 직장 유지라는 ‘미션 임파서블’급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계획과 잠입 작전에 가까운 동선을 짜야만 하고, 모든 위협과 돌발상황을 서바이벌 액션 영화처럼 극복해 내야 한다.

영화 '풀타임'은 싱글맘의 출근길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테러범과 사투를 벌이는 대자본 재난영화보다 훨씬 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동시에 관객들을 압도적인 몰입감이라는 영화적 체험 속으로 끌어들인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풀타임' 스틸. ⓒ슈아픽처스

이 작품이 스릴러 장르물로서의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복잡한 고증이 요구되지 않는 관객 모두가 매일 겪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 매우 영리하고 짜임새 있는 전개를 담은 탄탄한 시나리오, 심장을 뛰게 하는 긴박한 비트의 오리지널 스코어, 시간에 쫓기는 아슬아슬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워크와 뛰어난 편집, 그리고 지루함 없는 87분의 짧은 러닝타임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지난 2018년 10월 21일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이탈리아, 벨기에, 네델란드 등 주변국까지 번졌던 ‘노란 조끼 시위’를 실제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시위대는 정부의 부유세 인하, 긴축 재정과 유류세 및 자동차세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갔으며, 같은 해 12월 3일에는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은 80대 여성이 사망하기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이 곧 공포라는 소름 끼치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 영화 ‘풀타임’은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최우수 감독상(에리크 그라벨)과 최우수 여우주연상(로르 칼라미) 2관왕을 석권하고,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18일 개봉.

▲'풀타임' 포스터. ⓒ슈아픽처스
▲'풀타임' 포스터. ⓒ슈아픽처스

◆ 제목: 풀타임 (Full Time)
◆ 원제: À plein temps
◆ 감독: 에리크 그라벨
◆ 출연: 로르 칼라미, 안 수아레즈, 제네비에브 음니히, 시릴 구에이
◆ 장르: 일상 스릴러 / 드라마
◆ 배급: 슈아픽처스
◆ 러닝타임: 87분
◆ 개봉: 2022년 8월 18일
◆ 등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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