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기본적으로 정치를 불신하고 경멸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적인 위기에 처하면 기꺼이 대통령의 뒤에 서고, 성조기 아래 모인다. 불신을 접고 단합된 모습을 보인다. 테러의 광풍에 휩싸인 9·11사태 당시를 되돌아보자. 9·11 이후 미국인들은 너나없이 자기 집에 자기 나라 국기를 달았다. 가히 ‘국가적 최면상태’였다. 그것은 애국이었다.

2016년 11월, 대한민국은 희대의 국정농단 추문 속에 바람 앞 촛불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감히 말하거니와 우리는 9·11보다도 더 심각한 정신적 테러를 경험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국가적 위기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태극기 아래엔 모일지언정 대통령 뒤에 서긴 결단코 거부한다. 대통령에게 한조각 애국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제발 그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좀 내려오라고 외칠 뿐이다.

혹시 정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뉴스를 한국의 ‘대통령 위기’를 덮는데 악용하진 않을까 많은 이들이 우려한다. 지금도 ‘꼼수’가 통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는 어느 때보다 출중한 대통령의 ’외치(外治)‘ 능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국민은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내치(內治)에 앞서 외치부터 내려놓으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식물’이 된 대통령에게 그 엄중한 외치를 맡길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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