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최형호 기자]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31일부로 취임 1년을 맞았다.
정 사장은 지난해 6월 1일 취임하면서 그간 한전 혁신을 위한 추진 방안을 이행하면서 조직혁신과 내부통제, 사업 활성화에 힘썼다.
정 사장은 취임사에서 '과감'이란 단어를 10차례 언급하며 '속도있는 변화'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익성과 기업성의 조화 ▲가치경영과 수익성 제고 ▲에너지전환과 디지털 변환에의 대응 ▲고객 만족과 사회공헌 ▲협업 생태계의 조성 ▲해외 신사업 개척과 신성장동력 발굴 등의 가치에 힘을 보태 그 이상의 도약을 이끌겠다고 공언했다.
또 정 사장은 한전이 '탄소중립'을 이끌 에너지기업으로서 명확한 역할을 찾기 위해 ▲기술 혁신 ▲전력시장 변화 대응 ▲내부 조직문화 개선 등 조직 쇄신에 앞장섰다. 결과적으로 한전은 무겁고 둔한 조직 이미지에서 젊고 가볍고 빠른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이와 함께 정 사장은 지난해 여름 잇단 폭염으로 많은 우려를 낳았던 여름철 전력수급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해 위기대응 능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사장의 과감한 추진력은 그가 관료출신으로 한국가스공사를 이끈 경영 마인드와 한전 감독 부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으로서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경험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전기세 동결에 따른 경영악화 ▲현장 안전사고 ▲해외사업 지지부진 등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정 사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분야로 경영실적 개선, 안전대책 강화, 해외사업 실적 만회 등을 꼽았다.
◆ 안전관리 체계 재정립 등 조직개편
정 사장은 사업부진과 현장 안전사고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자 올해 초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개편의 주요 골자는 ▲현장중심 안전관리 체계 재정립 ▲에너지효율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 ▲연대와 협력의 에너지생태계 기반 구축 등이다. 안전관리는 물론 한전만의 핵심역량을 결집한 탄소중립 실현에 속도를 가하겠다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5일 한전 하청업체 근로자 김모씨는 여주시의 신축 오피스텔 인근 전봇대에서 전기 연결 작업을 하는 도중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졌다. 조사 결과 한전 측의 관리·감독 부실이 이번 사고의 주 원인으로 드러났다.
이에 정 사장은 '안전보건처'를 사업총괄 부사장 직속으로 변경해 현장중심의 안전관리시스템을 재정립해했다. 인력, 조직, 예산, 제도와 운영 등 전방위에 걸쳐 빈틈없는 사고예방체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탄소중립 사업도 더욱 강화했다.
정 사장은 ‘탄소중립전략처’가 에너지효율 개선의 총괄기능을 보강해 탄소 중립의 근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직 개편했다. 또한 ‘지속성장전략처’ 아래 ‘전력정책분석팀’을 신설해 국내외 전력산업 이슈 대응력을 높였다.
정 사장은 "앞으로도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차원의 중장기 미션 달성을 위해 한전 주도의 전력산업 공동발전 최우선적 역할을 수행하고, 선제적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전력산업 전반적 효율성 제고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창사 이래 최악의 성적표
한전이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것은 정승일 사장의 숙제다. 한전은 올해 1분기 7조7,869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5조8,601억원)보다도 약 2조원 가량 많은 적자를 기록하면서 재무상황에 빨간불이 켜진 것. 한전이 1961년 창사 이후 60여년만에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더욱이 한전의 적자는 올해 3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정 사장은 한전의 극심한 적자난에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부동산과 해외자산을 매각하는 등 실적 방어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전력의 고립된 자구책만으로는 현재의 적자를 탈출하긴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 한전의 '눈덩이 적자'는 최근 급등한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전기를 사들이는 도매가보다 판매가가 더 값싼 비상식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전의 적자탈출은 불가능하다.
정 사장은 위기 타개를 위해 긴축경영과 부동산 및 출자지분 매각을 통해 6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고강도 자구계획을 내놨지만, 이런 구조 하에선 사실상 역부족이라 평가 받는 이유다. 실제 한전이 6조원을 확보하더라도, 한전의 1분기 적자 7조7,869억원에 훨씬 못 미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유동자산을 현금화해 적자를 메우겠다는 목표는 당초 적자를 유발한 근본 원인과 맞지 않는다"며 "원재료 가격은 올라가는데 전기세는 계속해서 인상되지 않는다면 한전의 실적은 결코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로선 6조원 이상의 재무를 개선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며 "그룹사간 유사·중복 업무를 정리하는 등 경영 혁신에도 속도를 내며 위기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논란 많은' 해외사업
탄소중립 기조와 거리가 먼 해외사업 추진도 정승일 사장의 과제다.
앞서 한전은 논란이 일고 있는 인도네시아(자와 9·10)와 베트남(붕앙2) 석탄 발전 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호주 바이롱 지역 사업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한전은 국내외 환경단체, 연기금과 기관투자자 등 수많은 단체와 기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한전이 다짐한 2050탈석탄 기조와도 맞지 많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에서 붕앙2 사업은 1,000억원, 자와 9·10호는 85억원의 손실을 예상했다. 특히 한전의 해외 석탄 사업 진출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배출은 불가피해졌다.
반면 한전은 이번 사업 참여는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붕앙2 사업은 25년 장기 전력판매계약이 체결돼 안정성이 높고, 사업기간 투자지분 기준 기대순익이 7억 4,000만달러에 이르는 등 수익성이 높다는 게 한전 측의 설명이다.
또 한전은 2억달러의 지분투자로 25년 동안 연평균 14%가 넘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자와 9·10 사업도 마찬가지로 안정성이 높고 사업기간 투자지분 기준 7억달러의 순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 측은 "이런 수익성 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더 나아가 아세안 에너지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석탄사업 진행은 필수"라고 했다.
하지만 한전의 예측과 현지 사정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예비전력율이 적정 수준을 크게 웃도는 '에너지 설비 과잉' 상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와 9·10 석탄 사업은 인도네시아의 유일한 대체자원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도 20년 넘게 가동해온 15개 석탄발전소를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2028년께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재생 에너지 발전단가는 석탄발전보다 저렴해질 가능성이 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한 관계자는 "현지 특성상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석탄을 태우는 비용보다 저렴해진다면 더 이상 석탄발전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재발 방지책도 명확한 것이 아니어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사업 실패 땐 더 한전은 큰 고난에 부딪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이 사업은 국내에선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즉, 한전의 석탄발전소 자금은 국민의 혈세다. '기후악당 오명'은 물론, 사업이 실패하게 되면 세금이 가중되는 구조다.
한전은 호주 바이롱 사업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호주 법원에 상고심 판결에서 기각돼 석탄사업이 아닌 수소 등 유력하게 검토 후 친환경 사업으로 전환을 꾀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 사장은 지난해 국회 산자중기위 국정감사에서 "이미 신규 석탄화력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바이롱 지역의 석탄사업 대신 그린 수소사업을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사실상 녹록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수소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을 또 들여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이미 한전은 바이롱 석탄 사업으로 인해 11년 동안 투자한 사업비 8,269억원 중 7,662억원이 내부 회계상 손실 처리한 바 있다.
한전 역시 눈덩이 영업손실로 회사가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선뜻 수소 등 친환경 사업으로 전환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전 관계자는 “붕양2·자와 석탄사업 철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도 "바이롱 지역은 석탄사업 대신 그린 수소사업을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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