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전근홍 기자] 금융은 서로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야 빌리고, 투자한다.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계약에 금이 가고, 불안이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위기는 그렇게 신뢰 상실에서 촉발된다. 이러한 간단한 진리를 깨뜨린 곳이 바로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에서 터진 600억원 대 횡령사건을 두고 다수의 금융권 관계자들은 신뢰상실이 초래되면서 은행 존립 자체를 의심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 횡령 사건의 주범은 '기업개선부서' 차장급으로 재직했다. '기업개선부서'는 은행마다 부서 명칭과 업무 범위에 차이가 있지만 부서명 그대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주관하는 곳이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곳이다 보니 보안유지가 생명이었을까. 600억 이상 횡령을 했는데 은행도 검사 업무를 하는 금융감독원도 모르고 있었단 사실에 놀랄 지경이다.

우리은행은 자금이 빠져 나간 경위를 두고, 해당직원이 문서를 위조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돈을 송금했다가 다시 개인계좌로 이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을 내놨다. 소위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역할을 했던 'SPC'의 대표는 공범으로 자수한 해당직원의 동생일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돈을 SPC로 옮기거나 제 3의 계좌로 인출할 때 해당직원이 명목상 밝힌 출금 목적은 ‘소송 공탁금’이나 ‘신탁예치금’, ‘자산관리 회사인 캠코로 계좌관리 업무 이관’ 등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국가 망신의 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횡령자금의 일부가 이란 쪽으로 되돌려 줘야할 금전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횡령자금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 참여한 이란의 가전업체 엔텍합이 지불한 계약금(578억원)이 포함돼 있다. 우리은행이 참여한 채권단은 그해 12월 투자확약서(LOC) 불충분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을 몰수했다. 이후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2019년 최종 패소하면서 즉시 반환해야 하는 상태다.

신뢰를 잃기는 쉽지만 회복하긴 어렵다. 그러함에도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10년 가까이 된 시점이어서 내부적으로 경위 파악이 어렵다고 핑계를 대지 말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원덕 우리은행장도 각성해야 한다. 내부망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독려 편지를 공지할 것이 아니라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이라도 연출할 필요가 있다. 고객, 나아가 국민은 사과를 원하고 있다. 우리은행 스스로 신뢰를 저버리고 범죄 영화 각본을 썼으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결말로 끝을 맺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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