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85억원, SK하이닉스 68억원, LG 48억원, 포스코 30억원, 롯데 28억원, GS 26억원, 한화 15억원, KT 11억원, 대한항공 10억원, CJ E&M 8억원, 두산 7억원, 대림산업 6억원, 금호타이어 4억원, 아시아나항공 3억원, 아모레퍼시픽 2억원.

한국의 대외적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다는 미르재단에 30개 대기업(그룹)이 이렇게 기부한 돈이 486억원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불과 두 달도 안 되어 다시 19개 기업이 목적도 애매한 K스포츠 재단에 288억원을 더 주었다.

청와대 실세 개입의혹 논란으로 정치권에서 시끄러운 소위 ‘미르·K스포츠 재단 게이트’ 의 탄생 배경이다. 재단설립 신청 하루 만에 허가가 떨어진 사상 유래 없는 초고속 진행은 차지하고, 참 우리나라 기업들은 돈도 많다. 기업경영 사정이 나빠 죽는 시늉을 하면서도 이렇게 거금을 선뜻 낸다. 언제부터 우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사회공헌이 이렇게 높아졌는가.

두 재단을 위한 모금에는 전경련이 앞장섰다고 한다. 이승철 부회장은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 설립은 문화 체육 분야에서 기업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용해 전경련이 재단 설립을 실현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기업들이 문화와 체육에 뭔가 기여할 방법을 찾다가 그럼 재단을 만들자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진해서 경쟁하듯 수십억 원씩의 돈을 냈다는 얘기다.

그래놓고는 누가 재단의 책임자가 되든, 어떻게 운명하든, 돈을 어떻게 쓰든 관심도 없고, 관여도 안하는 대범함과 그야말로 조건 없는 기부. 당시 기부한 기업들이 당시 처한 상황을 보면 이해는 된다. 어느 기업 총수는 수사를 받고 있었고, 구속 중이었고, 어느 총수는 사면을 받았지만 여론의 화살을 맞고 있었고, 어느 총수는 회사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배불리기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었으니. 기업 ‘이미지’제고와 자신에 대한 권력층의 호의를 위해서라도 이런 돈쯤이야.

이렇게 기업들이 자진해 돈을 내, 그것도 국정기조를 도울 분야의 재단을 만들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즉각 OK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야당은 그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전두환 정권 때의 ‘일해재단’처럼 청와대 핵심 권력층과 연관된 인물들이 개입한 사실상 반강제라는 것이다.

‘일해재단’ 때는 어떠했기에 이런 말이 나오나. 그때도 공식적인 설명은 ‘재계의 자발적 출연’이었다. 당시 모금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받은 장세동씨는 청문회에서 “강제모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그의 주장이 맞는지도 모른다. “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은데, 만들고 싶은데 좀 도와줄 수 있느냐“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강제는 아니다. 협박은 더더욱 아니다.

“꼭 내라”고 해야만 강요인가. 같은 말이라도 누가 했느냐, 아니면 누가 시켜서 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따라 의견도 강제가 되고, 강요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기업이다. 당시 같은 사안을 놓고 정주영 회장이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고 했다. 그 마음 편하기 위해서가 양심이 아니라, 모이지 않는 권력이나 힘을 의식한 것이라면 기부가 아니라 강제납부이다.

그런데 이번 기부에는 아예 그렇게 ‘눈치’를 봐야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일에 돈을 낸 기업들이 한마디도 못하는 것일까. 자신들의 선의가 정치권에서 함부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에 침묵만 하고 있는 것일까. 자칫 ‘진실’을 말했다가는 정주영 회장이 말한 ‘마음이 불편한’ 정도를 넘어 큰 화를 입지 않을까 두려워서인가. 정말, 순수한 사회공헌을 위해 자발적 아이디어로 기부한 것이라면 꺼릴 이유도, 못 밝힐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전경련 부회장이 아니라, 누가 요청했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기업들 기부의 석연찮은 과정에 대해 가장 먼저 특종으로, 그리고 이후에도 줄기차게 구체적 ‘사실’ 취재로 보도한 곳은 TV조선이었다. 지금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렇게 문제를 삼고 나서고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동안 TV조선이 보도한 ‘팩트’만으로도 ‘미르·K스포츠 재단’은 설립, 기금출연, 인사, 운영에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의혹을 제대로 가려야 한다. 당사자들이 나서면 가장 정확하고 빠르고 좋다. 무언가를 감추려고 그냥 ‘아니요’ ‘모르쇠’로 지나가면 결국 일해재단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다.

한때 우리사회에, 특히 기업에 ‘준조세’가 너무 많아, 줄이거나 없애자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그러나 여전하다. 기업들로서는 법이 정한 세금보다 그것이 더 무서울지 모른다. ‘반강제’가 ‘자발적’이란 가면을 쓰고 있기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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