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타임스 장세규 기자] 추석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설레기는커녕 당장 생존을 위협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일하고도 몇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이다. 회사가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것도 모자라 퇴직금까지 아직 못 받은 근로자들도 부지기수다.

이미 2014년에 우리나라에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근로자는 30만명이나 됐고, 그 액수도 1조 3195원에 달했다. 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2009년부터 매년 1조원을 넘었다. 특히 올해는 더 심각하다. 알다시피 조선업이 전체가 불황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협력업체들이 하도급대금을 못 받아 그곳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대량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벌써 대우조선해양에서 37개, 삼성중공업에서 11개 관련업체가 폐업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도 57개 관련 업체가 문을 닫았다. 지난달 말까지 밀린 임금이나 퇴직금을 제때 받지 못했다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낸 근로자만 21만 4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체불액만 무려 9471억 원이다. 여기에 이제나 줄까 하고 기다리는 근로자들까지 합하면 올해 벌써 체불임금이 1조 4000억 원을 넘어섰다. 사상 최고이며 세계 최대 수준이다. 경제규모가 우리의 3배인 일본에 비해 10배나 된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탓에 고용여건이 좋고, 강소기업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는 대기업 하도급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어서 그 피해가 근로자의 인건비로 이어지는 폐단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만으로 일본의 10배에 가까운 우리나라 임금체불 규모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어느 나라에서든 체불은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의 도산과 경영부진에 의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정말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종업원들의 임금을 챙기는 기업도 있다. 그러나 경기가 조금만 나빠지고, 수익이 줄어들면 직원 월급부터 안 주는 사업주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고의로 부도를 내고 회사 재산 빼돌리는 악질 기업주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임금체불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사회적 시각과 사업주들의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 경영상황이 심각하지 않은데도 고의로,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들이 많다. 올해 구미에서 한 제조업체 회장은 근로자 54명에게 임금 7억 4000만원을 주지 않고 그 돈을 개인건물 신축과 상가매입 등에 써 구속됐다. 그것도 모자라 호화주택에 나무를 심는데 1억원을 넘게 썼다. 그러는 동안 일부 근로자는 제대로 못 먹어 병까지 났다.

조선업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원청업체에서 1억 8000만원을 받아 50여명 직원 임금 2억 8000만원을 주지 않고 개인 빚을 갚았다. 회사 재산 대부분을 빼돌린 뒤 잠적했다가 다시 2억 7000만원을 들여 다른 회사를 인수해 아들 이름으로 경영하다 구속된 사업주도 있다. 그에게서 직원들이 못받은 임금은 무려 8억 9000만원이었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사업주가 직원들의 임금을 빼돌려 개인 빚을 갚거나, 다른 회사를 만드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업주는 직원 월급만은 반드시 줘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감시와 처벌이 무엇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은 1000명에 불과한 미국의 17분의 1이다. 1명이 1800개 사업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철저한 감시, 감독을 기대할 수 없다. 악덕 사업주가 있어도 제대로 적발하기 힘들다.

근로자 생계가 달린 임금이야말로 최우선 변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와 사전에 임금체불을 막는 법과 제도개선도 시급하다. 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원사업자가 하도급대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전용계좌 등으로 임금, 자재대금 등 항목별로 제대로 지급하는 확인하고 강제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체불임금 사업주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체불임금액수 이상의 징벌적 부과금과 지연이자 를 부과해야 한다.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체불임금액보다 턱없이 적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는 아무런 방지효과를 낼 수 없다.

당장 급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임금체불로 생계 곤란을 겪고 있는 수 십만 근로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이다. 이들에게 법적 절차란 한가한 소리이고, 또 다른 길고 긴 고통일 뿐이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먼저 임금의 일부라도 지급해 생계걱정을 덜어 준 후, 해당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면 된다. 일자리 늘리기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일하고도 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들을 위한 대책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가 많아지면 무슨 소용인가. 임금 못 받으면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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