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젊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서비스인 ‘위즈돔’에서 진행중인 사람도서관 서비스사업 현장 모습. ⓒ SR타임스
▲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젊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서비스인 ‘위즈돔’에서 진행중인 사람도서관 서비스사업 현장 모습. ⓒ SR타임스

내남없이 여든까지는 사는 게 예사인 세상. 예순의 나이에서 바라보면 아직도 남아있는 나날, 살아가야 할 세월이 까마득하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라도 있거나, 연금이라도 두둑이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늦결혼 탓에 아직 아들놈은 대학도 못 마쳤고, 딸은 졸업했지만 아직 취직 못하고 있으니. 어디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 ‘밥벌이’의 구차함과 고단함과 지겨움이란. 한 30년 일했으면, 남은 나날은 편안하고 안락하게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방향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설령 모아놓은 돈이 많거나, 연금을 넉넉하게 받거나, 자식들이 푸짐하게 주는 용돈이 있어서 그냥 놀면서 지낸다고 하자. 그것으로 남은 생이 편안하고 즐거운‘백세인생’이 될까.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 여행? 운동? 친구만나기? 독서? 아니면 하루 종일 TV나 보면서? 그래도 시간은 남아돌 것이다. 일흔이 되면 지식, 여든이 되면 돈의 높낮이도 무의미해진다는 말도 있다.

인간에게 노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존재의 양식이자, 굴레이다. 노동 없는 삶은‘밥벌이’의 지겨움보다 훨씬 무의미하고 비참하다. 살아있는 동안 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낮고, 빛이 안 나고, 금전적 보답 하나 없는 봉사라 하더라도 그 시간이 바로 ‘삶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행복, 최선의 복지는 일이라는 말이 선전구호만은 아니다. 나이를 떠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자에게는 ‘희망’이란 없다.

일,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

고령화, 제2의 삶, 이런 단어들이 바로 나와 나의 아버지의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 하나의 직업, 한곳에서의 노동으로 인생을 다 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 세상. 정년퇴직을 하고도 3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세상. 이런 새로운 삶의 시간을 맞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프로이드는 “사랑하고 일하고, 일하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아내와 친구들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 밖에 없다.

그래서 벤은 일흔에 온라인 의류쇼핑몰업체인‘어바웃 더 핏’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인생을 새로 시작했다. 40년 동안 다닌 전화번호부책 제작회사를 은퇴한 후, 그는 여행, 골프, 독서, 영화감상, 중국어 배우기 등 뭐든 다해보았지만, 삶에 난 구멍을 메우지 못했다. 그는 그 구멍은 일만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어딘가로 출근하고 뭔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살아있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벤은 자기소개 동영상도 찍을 줄 몰라 손자에게 배워서 겨우 만들었고, 아직도 탁상시계 자명종으로 아침에 일어나고, 만년필로 종이에 직접 메모하는 아날로그 세대이다. 그래서 자유 복장에, 노트북과 휴대폰으로 대화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넓은 한 층에 모두 모여 근무하는 디지털 온라인의류 쇼핑몰 회사가 너무나 낯선 세상이고, 6주의 짧은 기간이지만 시니어 인턴생활을 시작한다. 매일 정장에 낡은 가죽가방을 들고.

처음 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는 듯했다. 신세대 직원들에게 그는 그저 쓸모없는 낡은 유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낯선 세계에서 자신의 과거를 전부 고집해서가 아니다.“너희 세대들이 뭘 알아”라며 자신의 것을 강요해서도 아니다. 제2인생의 인생과 직장을 위해 그는 과거 권위나 보답, 지위를 모두 버렸다. 대신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다른 세상이 오더라도 인간의 일과 사랑에서 변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와 경험들을 ‘처음부터 세상은 디지털’이라고 생각해 그것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겸손하게 선물한다.

▲ 맥도날드 미아점 점장이 최고령 임갑지 크루(87세)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맥도날드
▲ 맥도날드 미아점 점장이 최고령 임갑지 크루(87세)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맥도날드

액티브 시니어들을 위한 진정한 일자리는?

그는 회사에, 직원들에게, 나아가 젊은 여성 CEO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고령화 사회에서 제2의 일을 시작하면서 직장과 동료들에게 친구가 되고,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너그러움과 존중, 소통과 공감, 겸손과 세심함, 진정성일 것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눈물을 닦는데 빌려주기 위해 준비한 손수건처럼 작지만 필요하고 따뜻한 배려일 것이다. 영화 <인턴>의 얘기다.

삶이란 어차피 내 것을 하나하나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것이고, 그래야 어디에선가 필요한 사람이 된다. 노년이 될수록 더욱 더. 그래야 노동이 있는 삶, 삶의 존재로서의 노동이 가능하다. 진정한‘액티브 시니어’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일자리를 원하는 벤과 같은 ‘은퇴 후의 시니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단순히‘밥벌이’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삶의 존재로서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일까지도. 슬픈 고령화 사회, 무의미한 100세 시대를 맞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기업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맞지도 않은 곳, 아무 할 일도 없는 곳의 억지춘향 식의 일자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로에게 고통일 뿐이며, ‘밥벌이’를 위한 것이라면 더욱 구차하고 서글프다. 그들의 경험과 능력이 필요한 곳, 여기에 30년 이상 갈고 닦은 전문성을 썩히지 말고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더 ‘경제적이면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가.

▲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젊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서비스인 ‘위즈돔’에서 진행중인 사람도서관 서비스사업 현장 모습. ⓒ SR타임스
▲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젊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서비스인 ‘위즈돔’에서 진행중인 사람도서관 서비스사업 현장 모습. ⓒ SR타임스

‘실버산업, 실버일자리’주인공, 유한킴벌리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 월평균 소비지출이 167만원이다. 5년 전에 비해 13% 늘었다. 평균 소비성향도 60세 이상 가구가 71.4%로 가장 높다. 시니어들의 씀씀이를 얕보다가는 큰 코 다친다. 실버산업이 쇼핑, 미용, 외식, 여가로 점점 넓어져 2020년에는 125조원에 이를 것으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전망하고 있으니, 그런 일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사회에 필요한 산업도 키우고, 시니어들에게는 일자리도 주고 그야말로 ‘윈-윈’이 아닌가.

그게 어디 쉽나. 그래서 더욱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니 이미 2012년부터 ‘누군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 결과 267명의 시니어가 그런 곳에서 일을 하게 됐고, 이제부터는 전문직 은퇴자들의 경험을 활용한 ‘시니어케어매니저’사업도 함께 시작한다. 요양시설, 데이케어센터 등에 55세 이상의 은퇴한 간호사, 물리치료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들이 가서 건강상담과 정서안정을 돕는다. 이를 위해 근무 시간과 요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시니어 일자리 모델까지 만들었다.

그 ‘누군가’는 나무를 심는 사람, 유한킴벌리 이다. ‘함께 일하는 재단’과 손을 잡고 시니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소기업, 사회적 기업을 찾아서 육성하고, 그곳에 은퇴한 시니어들이 출근하도록 돕는 또 다른 나무심기를 하고 있다. 아직은 겨우 새싹이 돋은 나무처럼 작고 적다. 그러나 정성을 다해 가꾸고 있기에 은퇴한 시니어들과 함께 남아있는 긴 나날동안 그 나무는 자라서 열매를 맺고, 씨를 뿌려 숲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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