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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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의 결손과 맹목적 부정(父情)이 결합한 새로운 가족 신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올해 5월에 열린 제74회 칸영화제에서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영화 '티탄'이 커다란 화제를 모았다. 황금종려상은 주로 드라마 장르가 받아왔다. 파격적인 서사를 담은 '티탄' 같은 호러 스릴러가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을 받은 예는 찾기 힘들다.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영화 '티탄'은 교통사고로 머리에 티타늄을 심은 여성이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는 남성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야생 포식자에 가깝다. 감정을 억제하지도 욕망을 감추지도 않는다. 먹이에 조용히 접근해 방심한 사이 빠르게 해치운다. 그녀가 원래부터 그런 충동과 성향을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차 사고 영향으로 후천적으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알렉시아는 불꽃이 래핑 된 캐딜락 위에서 죄를 정화하듯 맹수처럼 춤을 춘다. 알렉시아의 섹슈얼리티는 차와 함께 할 때 더욱 빛난다.

귀가하는 으슥한 길의 스릴러 클리셰가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 알렉시아는 역전극으로 관객 감정을 급습한다. 그녀가 날카로운 금속을 단번에 꽂아 넣는 솜씨는 처음이 아닌 듯하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영화의 앞으로 되돌아가 알렉시아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그녀는 자동차 엔진소리와 공명하며 부서진 머리뼈 대신 티타늄을 이식하고 금속 가시관을 쓴 채 새롭게 태어났다. 

자동차 윤활유보다 인간의 타액을 더 더럽게 여기는 알렉시아는 기묘한 구애를 받는다. 둔탁한 두드림에 이끌려 종교적이며 성스러운 공간을 열고 나간 그녀는 그곳에서 거리낌 없이 기어 스틱에 몸을 맡긴다.

그녀와의 BDSM 적인 행위에 빠진 대상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자동차다. 피 대신 검은 자동차 오일이 몸에 흐르게 된 알렉시아는 인간을 거부한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미디어에서는 실종아동과 연쇄살인 이야기가 연이어 흘러나온다. 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는 서로 엮인다. 그것은 타란티노 영화 스타일의 학살극 한가운데에서 지쳐버린 짐승 알렉시아에게 허점이 생긴 순간부터 시작된다.

한 식탁에서 식사조차 하지 않는 아버지는 딸 알렉시아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감독의 전작 '로우'(2017)에서 아내와 딸들의 문제를 전부 수용해줬던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알렉시아는 그에게 있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은 기형적인 종양일 뿐이다.

알렉시아는 '로우'에서 사회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과 달리 손에 쥔 열쇠로 그런 아버지의 차가운 시선을 뜨거운 불 속에 가둔다. 감정이 결핍된 그녀에게 있어 그것은 그저 과거를 지우는 일종의 정화의식처럼 보인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오프닝에서 흘러나오는 'Wayfaring Stranger (16 Horsepower)' 가사처럼 그녀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이다. 영화 '1917'(2019)에서 이 노래가 전쟁에서 살아 돌아가길 바라는 귀향의 염원을 담은 가스펠로 사용됐다면, 알렉시아에게는 진짜 아버지와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인생 여정의 행진곡으로 쓰인다.

도피를 위한 불같은 악의를 가진 연쇄살인 용의자 알렉시아는 소방관 뱅상(뱅상 랭동)을 만난다. 고통스럽게 조작된 이 기만적인 시도는 뻔히 실패할 것만 같아 보인다. 하지만 결손을 채우려는 불안정하고 맹목적인 뱅상의 부정이 결합하자 거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완전히 안정화된다.

단번에 알렉시아는 아드리앵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짐승은 불을 다스리는 신과 같은 아버지 곁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는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노화로 인해 점점 약해져가는 뱅상은 자신의 권좌와 남성성을 약물에 의지해 필사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반대로 아드리앵은 부풀어 오르는 그로테스크한 여성성을 뱅상 앞에서 감추며 변신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젖가슴을 드러내건, 'Wayfaring Stranger (Lisa Abbott)'에 맞춰 춤을 추건 마치 나사렛의 요셉 같은 보호자이자 아버지인 뱅상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로우'에 이어 이 영화에도 소양증, 허물 벗는 인간, 말초적으로 전달되는 통각 등 불쾌함을 유발하는 영상과 이미지를 사용한다.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감각들이 스크린에서 전이되어 올 때마다 매번 그 연출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이 영화는 다양한 문학과 영화 그리고 종교의 상징적인 레퍼런스를 담아 독창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쉬'(1996)에서 자동차는 성 에너지의 해방과 강렬한 자극을 위한 도구이자 공간이었다면,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로우'에서 독특한 식욕 충동을 해소할 방법으로 자동차를 활용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더욱 발전해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적 신성을 자동차에 부여하고 아예 종족 번식능력까지 갖게 했다. 이 금속 오브제와 함께 만들어내는 판타지 의식 행위는 곧바로 납득하기에는 어려운 거부감과 생경한 면을 담고 있지만, 서서히 지켜 보는 이의 의식 속으로 매끄럽게 파고든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영화 후반부에는 '비디오드롬'(1983)처럼 인간 신체 재형성을 보여준다. 육체에 스며든 불순물이 생명으로 재창조된다. 그 모습은 마치 순교자의 희생이나 신의 탄생을 그린 성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상징적 이미지로 전달된다.

영화 '티탄'은 프롤로그부터 충격적이라 할 만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지만, 서사의 뼈대는 결국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이야기이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주제로 한다.

영화 속 일부 장면들이 주는 과격함과 불편함에 누군가는 중간에 극장문을 박차고 나갈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 어떤 휴머니즘 영화보다도 따뜻하고 깊은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티탄'은 가족애와 맹목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티탄. ⓒ왓챠, 영화특별시SMC

◆ 제목: 티탄(TITANE)
◆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러닝 타임: 109분
◆ 개봉일: 2021년 12월 9일
◆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출연: 뱅상 랭동, 아가트 루셀/수입·배급: 왓챠, 영화특별시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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