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 '서스페리아' 이래 경험해보지 못한 미장센의 호러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독립영화계의 명가 A24가 제작하고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연출한 '더 위치'(2015)로 데뷔한 안야 테일러 조이. 그녀는 자연광으로 촬영된 이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마스크로 단번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호러퀸' 유망주로 등극했다.

'23 아이덴티티'(2017), '글래스'(2019) 이후 넷플릭스 '퀸스 갬빗'(2020)으로 연기력을 확실히 인정받은 안야 테일러 조이가 '조조 래빗'(2020), '올드'(2021)의 토마신 맥켄지와 공연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오랜만에 만나는 완성도 높은 호러 영화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토마신 맥켄지)는 정말 특별한 감각과 능력을 지녔다. 그녀는 '베이비 드라이버'(2017)의 마일스처럼 음악과 함께라면 금방 무아지경에 빠진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엘리는 차 안이 아닌 1960년대풍으로 꾸며진 자기 방에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팟도 스마트폰도 아닌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점이다.

엘리는 자신이 디자인해 신문지를 오려 만든 멋진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자기 또래 보이 밴드를 좋아할 나이에 할아버지 뻘인 존 레논·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피터 앤 고든'의 'A World Without Love'(1964)에 맞춰 우아하게 춤춘다. 붓을 입에 물고 벽에 붙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포스터 속 오드리 헵번을 흉내 낸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를 엄마처럼 여기며 자란 엘리. 그래서인지 그녀는 살아본 적도 없는 할머니 세대의 세상, 제2차 세계대전 잿더미에서 살아남은 운 좋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기쁨과 희망을 뿜어내던 활기찬 1960년대를 동경한다.

그런 엘리에게 좋은 소식이 도착한다. 그토록 원하던 런던 패션 대학에 합격한 것. 엘리는 일류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소중한 레코드판을 챙겨 런던 소호로 향한다.

하지만 이 순박한 시골 소녀가 경험한 대도시 런던의 첫인상은 '불쾌함'이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1977) 속 주인공 수지가 발레 학교로 가기 위해 폭풍우 치던 밤 탔던 불친절한 택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학교생활도 엘리의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조용히 적응해보려 하지만 특별함을 지낸 엘리에게 주변 사람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그때, 타지에서 겉돌며 힘들어하던 엘리가 우연히 찾아낸 소호의 어느 낡은 건물 꼭대기 방. 그곳은 그녀의 완벽한 현실 도피처가 된다. 담배를 싫어하는 집 주인이 내건 까다로운 입주 조건은 외톨이 엘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1960년대 런던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인 엘리에게 이 금남의 여성 전용 원룸은 마법 같은 꿈과 행복을 안겨주는 미스터리한 공간이 되어준다.

붉은색과 파란색, 네온 라이트가 자신만을 비춰주는 세상에서 엘리는 꿈속에 빠져든다. 그 순간, 좁고 긴 통로를 지나 마치 거울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엘리는 신기한 세계를 경험한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숀 코너리의 '007 썬더볼 작전'(1965)이 개봉 신작으로 극장에 걸려있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1960년대 세상에 들어선 엘리. 그녀는 그곳에서 가수 지망생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를 처음 만난다.

1960년대 소호의 샌디는 무대 위 스타가 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샌디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무대에 올라설 기회뿐이었다. 

꿈속 샌디에게 푹 빠져든 엘리는 2020년대 현실로 돌아와 그녀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 곧 엘리는 자기 자신조차 놀랄 만큼 변신한다. 금발 머리부터 하얀 비닐 코트까지 샌디의 빛나는 매력을 그대로 모방하게 되자 자신감도 급상승한다. 샌디를 통해 얻은 영감 덕분에 패션 디자인 실력까지 일취월장. 아웃사이더였던 엘리는 모두의 주목을 받는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샌디도 위기의 순간, 영웅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고 무대 위의 프리마돈나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하는 매력적인 매니저 잭(맷 스미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내성적이지만 큰 가능성을 가진 한 소녀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매력적인 워너비를 만나 멋지게 성장한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자신만의 꿈을 이루게 되는 예쁜 청춘 판타지 드라마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원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한 호러 장르 영화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호러 장르로의 변곡점은 의문의 백발노인(테렌스 스탬프)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금발의 엘리를 보자 그녀 뒤를 따라온 이 남자는 "엄마가 누구냐"는 질문으로 묘한 불안감을 던진다.

한편,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특별했던 여자 샌디. 그녀가 화려한 쇼비즈니스 세계 그 뒷면의 진실을 알아차릴 즈음에는 이미 자기 꿈이 무엇인지도 기억 못 할 정도로 내면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매혹적이었던 네온 라이트는 다운타운의 탈출구 없는 매음굴에 갇힌 그녀를 비추는 순간, 어느새 이탈리아 지알로(Giallo) 무비 속 조명처럼 변한다. 이 미장센은 일그러진 얼굴들과 함께 등장하면서 공포를 증폭해 관객의 심장을 조여온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가장 빛나는 별과 같은 눈동자를 가졌던 샌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엘리. 그렇기에 위기 속에서도 영원한 고통을 받아 마땅한 자들의 염치없는 애원을 거절한다. 

거울 나라에서 돌아온 엘리는 졸병(Pawn)에서 여왕(Queen)으로 성장한다. 그녀의 영적 능력이 이상하고 별난 것이 아닌 정말 특별한 선물이 되는 순간이다.

'007 여왕 폐하 대작전'(1969)의 트레이시 본드 역과 '왕좌의 게임'의 올레나 티렐 역으로 유명한 고(故) 다이애나 리그에 대한 추모와 함께 시작하는 이 영화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비디오 드롬'(1983)처럼 현실과 환각 사이를 오가는 연출이 특징이다. 

환영과의 경계가 모호한 '비디오 드롬'과의 차이점은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시퀀스에서 알람소리가 두 세계를 구분하는 시그널이 되어준다는 것. 마치 '인셉션'(2010)에서처럼 '킥'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후반부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격한 시각 연출과 함께 서사를 뒤집는 영리함도 돋보인다. 추리 소설처럼 사고력을 제한하는 몇 가지 장치를 심어 둔 덕분에 결말을 유추한다 해도 세련된 연출과 서사 설계에 감탄하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이 영화는 각본과 연출만큼이나 촬영 테크닉이 뛰어나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안야 테일러 조이와 토마신 맥켄지가 함께 나오는 클럽 댄스 신이나 거울 장면의 대부분을 스테디캠으로 원테이크 촬영했다.

누군가에게는 영원하게 잊고 싶은 과거가 또 다른 이에게는 환상의 세계가 되는 꿈속 연결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 지점을 완벽하게 살려야 하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중요 장면은 모션 캡처 없이 두 배우가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연기했다. 일부 장면과 배경에만 CG가 사용됐을 뿐이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올해는 개봉한 공포 영화 중에 웰메이드 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 많지 않아 호러 장르를 사랑하는 팬들의 아쉬움이 컸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아름다운 미장센을 갖춘 유일한 호러 영화다.

안야 테일러 조이가 직접 부른 'Downtown' 등 영화 속 음악이 전하는 감성 역시 특별하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사운드트랙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게 2007년 정도다. 음악 리스트를 만드니까 영화의 스토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밝힌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올해 호러 영화 팬들의 진정한 구원자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아름다움과 공포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로 몽환적인 스릴러의 세계를 확장한 웰메이드 작품이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유니버설 픽쳐스

◆ 제목: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원제: Last Night in Soho)

◆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 러닝 타임: 116분

◆ 개봉일: 2021년 12월 1일

◆ 감독: 에드가 라이트

◆ 촬영: 정정훈

◆ 출연: 토마신 맥켄지, 안야 테일러 조이, 맷 스미스, 리타 터싱햄, 테렌스 스탬프, 다이애나 리그

◆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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