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 감춰진 남성성을 깊이 파고드는 제인 캠피언 감독의 마스터피스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20세기 서부를 배경으로 한 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얼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코디 스밋맥피 주연의 '파워 오브 도그'는 로맨스 영화이자 서스펜스 심리극이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3관왕의 영예를 안은 '피아노'(1993)의 제인 캠피언 감독이 '브라이트 스타'(2009) 이후 1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5년,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의 버뱅크 형제는 부유한 목장주다. 형 필(베네딕트 컴버배치)과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는 형제 이상의 둘도 없는 단짝.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필은 목장 카우보이들이 우러러볼 정도로 남성적 매력이 넘친다. 소를 거세할 때는 가죽 장갑조차 끼지 않는다. 그는 맨손으로 아주 능숙하게 몇 번의 칼질로 일을 끝낸다. 왜 도시로 나가지 않고 시골 농장에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대학을 나온 그는 잘 생겼으며 머리도 비상하다.

그런 필의 실루엣은 모든 것이 거칠다. 그는 어디에서나 카우보이 가죽바지를 입는다. 물욕조차 없는 자신의 성격을 대변하듯 상감 없는 수수한 철제 박차를 차고 있다. 계단을 오를 때나 마룻바닥을 걸을 때마다 위협적인 소리를 낸다.

냉정하고 창백한 눈동자를 가진 필은 욕구에 초연한 모습으로 거친 사내들 사이에서 알파 메일(Alpha Male) 그 자체로 군림한다.

집에서 편하게 욕조에 몸을 담그는 동생 조지와 달리 필은 강으로 향한다. 그가 비밀 의식을 행하듯 나체로 몸을 씻는 장소는 동생을 포함해 그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고뇌와 억눌림에 떨며 온몸에 진흙을 바르기도 한다. 그가 안식을 얻기 위해 오랫동안 반복해온 방법이었다.

필과 달리 둥글둥글한 인상의 동생 조지는 느릿하지만 온화한 성격을 지녔다. 형처럼 머리가 좋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은 신사다. 

그는 형과 1900년 이래로 25년간 동업자 관계를 유지해온 공동 목장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탄저병으로 죽은 소에 대해 형에게 물어볼 정도로 목장 일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일견 어수룩해 보이는 조지는 형 필이 세상을 떠난 '브롱코 헨리' 이야기를 꺼낼 때면 왠지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필은 동생 조지를 뚱보라고 부른다. 아직도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이들의 형제애는 돈독해 보인다. 이 독신자 형제는 지금까지도 유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버뱅크 형제의 기묘한 유년기는 식당 레드 밀을 운영하는 과부 로즈(키얼스틴 던스트)와 그녀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을 만나면서 종말을 고한다.

로즈의 아들 피터는 아주 섬세하게 종이를 잘라 꽃을 만든다. 마치 피터의 예민한 감수성을 대변하는 것만 같은 종이꽃. 그것은 홀어머니를 향한 그의 지극하고 애틋한 사랑을 상징했다. 로즈는 아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종이꽃으로 식당 식탁을 예쁘게 장식한다.

마치 무법자처럼 소몰이꾼 무리를 이끌고 식당에 들어선 필은 그들의 평온한 삶을 흔든다. 필은 교활한 표정으로 피터와 피터가 만든 종이꽃을 조롱하고 불태운다. 아들 피터가 카우보이들 앞에서 놀림감이 되지만 로즈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한다. 약자인 그들은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다.

한편, 조지는 형의 행패로 상처 입은 로즈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 감정은 어느새 사랑으로 변한다. 그렇게 로즈는 조지의 아내가 된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영화의 숨 막힐 듯한 심리극은 인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침대에서 자던 동생 조지를 빼앗긴 필은 제수가 된 로즈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싫어한다.

형제 사이에 끼어들어 불청객이 되어버린 로즈는 필의 휘파람과 밴조 연주 소리 그리고 그가 훑고 지나가는 모든 것에 짓눌린다. 피할 곳이 없었다. 로즈는 술에 의지하며 점점 망가져 간다.

필의 괴롭힘은 피터에게도 이어진다. 필은 거친 사내들 사이에서 놀림 받는 피터를 아예 자기 밑에 들인다. 로즈는 필로부터 아들을 지켜낼 수 없었다. 모성으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로즈는 피터와 필이 함께 걸어 들어간 마구간이 지옥문처럼 닫힐 때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이 일방적인 강자의 괴롭힘에 변곡점이 생긴다. 필은 피터에게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의외의 일면을 본다. 마치 브롱코 헨리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피터. 소년을 냉랭하게 바라보던 필의 눈빛에는 조금씩 미묘한 동요가 생기기 시작한다. 필은 맨손으로 가죽 밧줄을 꼬며 피터와 자신의 모습을 그 옛날 브롱코 헨리와의 관계에 투영하고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건넨 부드러운 소가죽 장갑을 만지며 눈물 흘리는 로즈. 잔인하고 매서운 공포로부터 그녀를 지켜줄 장갑 같은 존재는 어머니에게 헌신적인 아들 피터뿐이었다. 피터는 담배를 말아 필과 나눠 피운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프롤로그 내레이션에서부터 사건의 전말을 전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곳곳에 퍼즐처럼 단서를 자연스럽게 흩뿌려 놓는다.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불협화음의 오리지널 스코어 속에서 너무나도 영리하게 조립되어가는 이 이야기는 격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최종장을 향한다.

출연 배우들은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사랑과 연민, 불안과 분노, 회한과 복수의 감정을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전한다. 그 감정은 캐릭터마다 온전하게 다층적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미묘한 표정에서부터 작은 몸짓까지 모든 것에 몰입하게 만든다.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섬뜩한 결말은 심연을 느끼게 할 만큼 강렬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제인 캠피언 감독은 토머스 새비지의 1967년 작 소설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 민음사 번역본 출간)를 읽고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

제인 캠피언 감독은 원작소설에 대해 "단순히 1925년의 목장 생활에서 나온 카우보이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경험이 들어있었고, 그래서 이야기에 대해 진정한 신뢰감이 들었다. 남성성에 대해 그토록 깊이 파고들었다는 점과 숨겨진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소설과 영화의 제목인 '파워 오브 도그'는 성경 시편 22편 20절 '제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저의 소중한 것을 개들의 힘으로부터 구하소서'에서 따왔다. 캠피온 감독은 "해당 시편의 특이한 점은 매우 노골적이고 잔혹한 표현에 있다. 열정을 매우 대담하고 동물적인 것으로 통렬하게 그리고 있는데, '개의 힘'이라는 것은 그런 종류의 열정과 관계가 있다. 성적이고 사나우며 강렬하고 위험한 동물적인 본능"이라고 제목을 해석했다.

중요 시퀀스의 순서를 조금만 바꿔 편집했다면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가진 통속적인 서스펜스 스릴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제인 캠피온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완벽한 연출과 프로덕션, 뛰어난 연기로 완성된 '파워 오브 도그'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노려볼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 감독상을 받았으며 제49회 뉴욕영화제, 제4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오는 12월 1일 넷플릭스 공개 전 홀드백 기간 동안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대형 스크린 관람을 추천하는 작품이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넷플릭스

◆ 제목: 파워 오브 도그(원제: The Power of the Dog)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 타임: 126분

◆ 각본·연출: 제인 캠피언

◆ 원작 도서: 토머스 새비지의 ‘파워 오브 도그’

◆ 제작: 제인 캠피언, 타냐 세가치언, 에밀 셔먼, 이언 캐닝, 로제 프라피에

◆ 촬영 감독: 아리 웨그너

◆ 프로덕션 디자이너: 그랜트 메이저

◆ 오리지널 스코어: 조니 그린우드

◆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얼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코디 스밋맥피, 토머신 매켄지

◆ 개봉일: 2021년 11월 17일

◆ 공개일: 2021년 12월 1일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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