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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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필의 영혼을 만족시킬 아트버스터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비주얼리스트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의 시작은 마치 오디오북을 듣는 것 같다. 시작부터 흘러나오는 안젤리카 휴스턴의 우아하고 차분한 내레이션 덕분이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시대 최고 수준의 저널리스트들이 한데 모인 '프렌치 디스패치'는 세계 정치, 예술, 대중문화, 패션, 요리 등 다양한 소식을 50개국 50만 독자에게 전하는 주간지다.

이 잡지는 미국 캔자스 리버티 출신인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레이)가 대서양을 건너와 프랑스에서 창간했다. 창간인이자 편집장인 그는 75세가 되던 해인 1975년, 50년 만에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그는 타자기와 함께 묘지에 안장된다.

하위처의 부고는 곧 프렌치 디스패치의 부고를 의미했다. 유언에 따라 잡지사가 영구히 문을 닫게 되고 소속 저널리스트들은 프렌치 디스패치의 마지막 발행본에 싣게 될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잡지의 서두를 장식하는 '자전거 타는 기자' 허브세인트 새저랙(오웬 윌슨)의 '300단어로 쓰는 도시 스냅숏'은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앙뉘의 과거와 미래를 비교하고 그 면면을 하루 만에 돌아보는 내용이다.

태엽 시계 장치처럼 한순간에 분주한 일요일 아침을 맞이하는 이 도시의 지하에는 쥐가, 지붕 위에는 고양이가 가득하고 여인숙 구역에는 학생들이 몰려 시끌벅적하다. 팩트 체크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명이 잔뜩 쓰인 창녀, 남창, 포주가 등장하는 도시의 어둡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 그 속에는 뒤에 이어질 기사들 속 앙뉘의 감옥, 혁명의 거리, 범죄자 등이 숨은그림찾기처럼 스케치 되어 담겨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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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에 몇몇 의도된 오타를 지닌 J.K.L 버렌슨(틸다 스윈튼)의 '콘크리트 걸작'은 미친 예술가와 그의 뮤즈를 담은 위대한 명작에 관해 이야기한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유대계 천재 예술가 모세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앙뉘의 감옥 겸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다. 10년 넘게 양치질 대신 구강청정제를 들이켜는 그가 과거의 자신과 배턴 터치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감옥에 갇힌 로젠탈러는 16남매의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교도관 시몬(레아 세이두)에게 매료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강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에로틱하고 우스꽝스러운 마스터·슬레이브 관계 속에서 로젠탈러는 10년 만에 붓을 들어 뮤즈 시몬을 모델로 그림을 완성한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 분열적인 묘사의 그림은 마침 탈세 죄로 갇혀 있던 탐욕스러운 미술상 줄리안 카다지오(애드리언 브로디)의 눈에 들어온다. 단번에 모세의 천재성을 돈으로 환산해낸 카다지오.

그는 이 미친 살인마 화가를 감옥 바깥세상에 멋지게 포장해 내놓는다. 예술적 허영심을 이용한 세일즈 마케팅은 적중했고 로젠탈러는 잘 팔리는 작가로 미술계에 우뚝 선다. 하지만 카다지오는 비싸게 팔아먹을 새 작품을 내지 않는 로젠탈러 때문에 애가 탄다. 마침내 로젠탈러가 새로운 걸작을 완성해 내자 카다지오는 크게 기뻐하지만, 곧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깨닫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두 번째 기사는 정치와 시가 함께하는 섹션에 실린 루신다 크레멘츠(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선언문 개정'이다. 편집부가 요청한 것보다 6배 가까운 양으로 완성된 이 원고는 운동권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욕구, 사랑 그리고 삶을 다룬다.

학생 대표 제피렐리(티모시 샬라메), 그리고 학생들이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 문제로 체스 내기하는 자리에 모여 있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에서 크레멘츠는 외롭고 고독한 저널리스트로 등장한다.

그녀는 제피렐리 부모 집에 초대되어 남자를 소개받는 자리임을 뒤늦게 깨닫고는 자신이 당당한 독신주의자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 크레멘츠는 거리의 최루 가스를 핑계 삼아 눈물을 흘리며 한숨 쉰다. 그러다 우연히 제피렐리와 마주친 크레멘츠는 그가 쓴 선언문을 교정해 주면서 관계를 맺는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랑스 레볼뤼시옹 정신을 대표하는 순진하고 열정적인 이 학생 운동가의 투쟁은 앙뉘의 여인숙 구역 한 카페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제피렐리는 군 복무하는 친구를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 가담자라고 몰아붙이는 다른 파벌의 줄리엣(리나 쿠드리)과 설전을 벌인다.

하지만 친구의 탈영 선언을 계기로 제피렐리도 혁명에 참여해 장년·청년 세대와 계층이 대립하는 체스판 혁명 운동의 선봉에 선다. 선언문을 다듬어 준 크레멘츠는 언론의 중립성을 두고 줄리엣의 비판을 받는다. 이 논쟁은 어느새 제피렐리, 크레멘츠 그리고 줄리엣의 삼각관계를 이야기한다.

이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로맨틱한 시처럼 구성된 기사는 블라제강에 가라앉은 라디오 타워와 함께 혁명의 아이콘이 된 젊은이들의 나르시시즘을 언급하며 끝맺는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지막 기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썼다는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의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이다.

맛과 냄새 섹션에 실리게 된 위대한 셰프 네스카피에 경위(스티브 박)에 대한 이 단평에는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프렌치 커넥션'(1971)같은 범죄 스릴러와 카체이싱, '틴틴의 모험'같은 프랑스 만화의 이미지가 담겼다.

문장 기억력이 뛰어난 로벅 라이트의 TV 인터뷰와 함께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앙뉘 경찰서장 석찬 시식회를 첫 무대로 한다. '경찰 요리법'으로 유명한 네스카피에의 초대장을 받아들고 걸어가는 로벅 라이트의 시점 구도는 웨스 앤더슨 감독만의 시그니처 장면이다. 그의 전작에서도 보여준 고정된 문서 레이어 밑에 장식된 발걸음, 3D 시각의 배경 움직임, 그리고 통로 정중앙을 지나는 인물 구도가 주는 시각적 집중이 똑같이 재현된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경이로운 풍미로 유명한 네스카피에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경찰서 이곳저곳을 탐방하던 라이트는 예전 그 안에 갇힌 경험이 있는 경찰서 닭장을 지나 마침내 경찰서장(마티유 아말릭)의 식탁에 앉는다. 그러나 경찰서장의 후계자인 외동아들 지지가 갑자기 납치되면서 시식회는 구출 작전 현장으로 무대를 옮긴다.

납치범들은 지지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범죄 조직의 비밀을 쥔 아바쿠스(윌리엄 데포)를 석방 또는 처형하라는 조건을 내건다. 경찰은 여러 가지 수완을 발휘해 결국 경찰서장 아들이 납치된 장소를 찾아낸다. 총격전을 벌이던 경찰과 납치범들은 교착상태에 빠진다. 이때 은밀히 전달된 지지의 메시지를 받은 경찰은 네스카피에를 범인들의 아지트에 보낸다.

시퀀스 일부가 실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되는 이 범죄 스릴러 이야기에는 광고를 빼는 한이 있어도 기사를 자르지는 않았던 하위처의 의도가 들어가면서 글의 풍미가 더해진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옴니버스 영화다. 이야기를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 극히 단순한 플롯이다. 하지만 내용 이해가 쉽지 않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최면을 걸듯 흘러나오는 단조로운 시그널 음악과 함께 내레이션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는 이야기 뼈대를 쉽게 집어내지 못할 만큼 두터운 살이 붙어 있다.

이 영화를 관람할 때는 흐름을 놓치지 않겠다는 관객의 의지가 중요하다. 눈을 부릅뜨고 웨스 앤더슨 감독이 제공하는 저널리스트를 향한 이 러브레터 속 시청각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관람에 성공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다면 N차 관람이 필요할 수 있다.

아카데미 35mm 필름 규격의 화면, 흑백과 파스텔 색감을 오가는 미장센, 절단면 벽 안쪽 오브젝트를 부각하는 상하좌우 스크롤 기법, 정중앙의 안정감과 공간의 원근감을 살린 움직임, 만화적인 묘사의 코미디와 풍자, 연극적인 무대장치 등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더 없는 즐거움을 안긴다.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리나 쿠드리, 스티브 박, 마티유 아말릭, 애드워드 노튼, 윌리엄 데포, 시얼샤 로넌 등 유명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만의 풍요로운 캐스팅도 장점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문라이즈 킹덤'(2013), '다즐링 리미티드'(2007),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에 이어지는 이 작품은 시네필의 영혼을 만족시킬 또 하나의 아트버스터다.

◆ 제목: 프렌치 디스패치(원제: THE FRENCH DISPATCH)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 타임: 107분

◆ 개봉일: 2021년 11월 18일

◆ 감독: 웨스 앤더슨/출연: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빌 머레이, 제프리 라이트, 애드리언 브로디, 베니시오 델 토로 외/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프렌치 디스패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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