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 속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치유의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오는 17일 개봉하는 조은지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는 평범하지 않은 복잡한 사생활과 로맨스에 얽힌 인물들이 점차 관계 회복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픈마인드'라는 다양성과 포용성 넘치는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하는 순모(김희원)는 속이 타들어 간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절친인 현(류승룡)때문이다. 현의 신작 소설은 도대체 언제 나오냐는 투자자 성화에 그는 매번 진땀을 뺀다.
현이 새로운 소설을 쓱쓱 써 내려가며 스위스 융프라우요흐역에서 공짜 컵라면이나 먹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7년째 슬럼프에 빠져 글 한 줄 못 쓰고 있다. 순모는 현을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하며 어르고 달래 보지만 새 소설이 나올 기미는 없다.
재혼 후 기러기 남편으로 사는 작가 현도 현생이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교수 월급과 책 인세는 전처 양육비와 현처 유학비로 통장을 스치듯 빠져나간다. 결국 수중에는 고작 월 18만원만 남는 욕 나오는 인생.
몇 년째 글발이 전혀 서지 않는데 순모는 올해 안에 새 작품 못 내놓으면 지금까지 받은 돈은 모조리 다 토해내야 한다는 최후통첩까지 한다. 거기다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던 후배 작가는 부커상 후보로 승승장구하며 치고 올라와 자존심을 팍팍 긁는다.
진퇴양난 압박 인생을 사는 현에게 고민은 또 있다. 이혼 합의서를 잘못 써준 탓에 아들 성경(성유빈)이 만약 대학진학을 못하면 평생 양육비를 대줘야 한다. 현은 뒤늦게 성경에게 제대로 된 아빠 노릇을 해보려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성경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자기 몰래 바람피운 여친에게 차인 가슴 찢어지는 사연도 안고 있다. 하지만 이 괴로움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은 가족 중에 아무도 없다.
성경의 아빠 현은 전처인 엄마 미애(오나라)와 불륜을 저지르려 하고, 엄마 또한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 친구 순모 아저씨와 몰래 연애 중이다. 성경 입에서 "거지 같은 집구석"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만하다.
그런 성경이 비뚤어지려는 찰나 옆집 아줌마 정원(이유영)이 나타난다. 그녀는 배우를 꿈꾸는 연상의 4차원 유부녀. 감수성 충만한 고3 청소년 성경은 그녀의 알쏭달쏭한 매력에 어느새 푹 빠져들고 만다.
한편, 학교 제자이자 작가 지망생 유진(무진성)은 스승인 현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현이 모든 것을 잃을까 무서워서 글을 못 쓰는 거 아니냐며 그의 슬럼프 이유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유진.
정곡을 찔린 현은 어느날 유진이 쓴 거침없는 문체의 날선 습작을 읽어보고는 큰 자극을 받는다. 괜찮은 작품이 될 것임을 직감한 현은 유진에게 소설을 공동 집필을 하자고 제안한다.
◆ 조은지 감독 첫 장편 영화 연출작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조은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연출작이다. 2000년 영화 '눈물'을 통해 데뷔한 이후 2019년 '카센타'까지 배우·각본가·각색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 활동을 펼쳐온 조은지 감독은 단편 영화 '2박 3일'로 2017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조은지 감독은 이번 영화의 제작보고회에서 "다양한 여섯 명의 인물들이 얽혀 벌어지는 일들을 관계라는 소재로 이야기하고 싶었고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유쾌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즉, 이 영화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친구, 가족, 부부, 스승과 제자, 애인, 이웃 등 다양한 인간관계가 각 캐릭터마다 복합적으로 부여되고 그들 사이에서는 선 넘을 듯한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연출된다.
현과 미애의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쿨내 나는 이혼 부부 관계, 순모와 미애의 누아르 적 멜로과 지고지순한 사랑의 비밀 연인 관계, 연상연하 정원과 성경의 미묘한 이웃사촌 관계, 현과 유진의 사제 간을 초월한 복잡한 관계 등이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진다.
그 속에는 모성애와 부성애, 로맨스, 우정,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 들어있다. 결국 이 모든 관계는 사랑으로 귀결되고 치유된다. 복잡하게 꼬인 삶을 살던 현은 사생활만큼이나 정신없는 아파트를 벗어나 미니멀리스트 적인 유진의 옥탑방에서 모든 것을 초기화해 새롭게 시작한다. 현과 유진의 이야기는 이 작품의 서사 중심에 놓이며 다양성 영화적 일면도 보여준다.
매년 4월 1일 단 하루만 존재하는 자유로운 나라 '우주피스 공화국'은 인물들의 이상적인 성장 공간으로 활용된다. 벽에 붙은 사진에 그치지 않고 실제 리투아니아 로케이션 촬영된 이 부분은 영화 속에 이국적인 풍광을 더한 연출의 열정이 느껴진다.
꽤 유쾌한 코미디 요소들이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하지만, 살짝 엇박자를 내는 부분은 조금 아쉽다. 또 정원과 성경의 관계가 코미디극에서 이탈하는 순간은 서사에 너무 많은 감정을 담으려는 시도가 아닌가 싶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극한직업', '자산어보'에 이어 이 영화에 출연한 류승룡을 필두로 오나라, 김희원, 이유영, 성유빈, 무진성을 비롯해 특별출연한 오정세, 류현경까지 배우들 연기에는 구멍이 없다. 특히 이 영화에서 류승룡이 보여주는 코믹 연기는 그의 개봉 예정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까지 기대하게 할 만큼 돋보인다.
여기에는 류승룡이 "배우 연기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이고 섬세한 연출력까지 갖춘 장점이 많은 감독"이라고 칭찬한 조은지 감독의 연기 연출력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지난 4일 진행된 언론 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조은지 감독은 "인물들이 가진 감정에 더 관객들이 잘 따라갈 수 있게끔 했다"며 "보편적인 감정으로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이 인물관계나 캐릭터의 설정으로 관객들에게 불편한 시선이 되지 않게끔 그런 지점에 중점을 뒀다"며 연출에서 특히 공들인 부분에 대해 전했다.
우주피스 공화국 헌법 제6조에는 '모든 사람은 사랑할 권리를 가진다'고 적혀 있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그런 정신을 따르는 영화다.
◆ 제목: 장르만 로맨스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 타임: 113분
◆ 개봉일: 11월 17일
◆ 감독: 조은지/출연: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이유영, 성유빈, 무진성/제작: 비리프/제공·배급: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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