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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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영화 사상 가장 예술적이며 문학적인 작품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오스카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노매드랜드'(2020)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이터널스'는 MCU 페이즈4의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 새로운 영웅들의 이야기는 기존 마블 영화와는 결을 달리하며 클로이 자오 감독만의 독특한 연출 감각으로 전체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10명의 '이터널스'는 7,000년 전 지구에 도착한 인간을 넘어선 외계의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올림피아 행성에서 왔다고 믿는 이터널스는 인류의 수호자로 역사를 함께 하며 언젠가는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별로 돌아가리라 생각한다.

기원전 5000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기원전 2500년경의 고대 바빌론, 기원전 1521년 아즈텍 제국, 서기 400년 동남아시아 굽타 제국까지 이터널스는 인류 문명 발생의 큰 역할을 하며 우주적 존재인 '셀레스티얼'의 명령에 따라 인간을 잡아먹는 돌연변이 포식자 '데비안츠'를 코스믹 에너지를 사용해 물리친다.

▲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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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유일하게 셀레스티얼과 대화할 수 있는 프라임 이터널스 에이잭(셀마 헤이엑)은 인간을 사랑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모든 이터널스가 에이잭 같지는 않다. 이터널스 멤버 중 몇몇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큰 실망을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숙적 데비안츠가 사라지자 이터널스도 뿔뿔이 흩어져 인간 세상에 스며들어 조용히 살아간다. 이터널스의 초인적 능력과 데비안츠와의 싸움은 인간들 사이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와 나라별 괴담으로 전승된다.

긴 시간이 지난 후 그동안 사라졌던 데비안츠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인류를 위협한다. 영국 런던에서 박물관학자로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던 이터널스 세르시(젬마 찬)는 다시 데비안츠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왔던 연인 이카리스(리차드 매든)와 함께 나머지 이터널스 멤버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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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자오 감독은 인간과 지구의 종말을 저지하려는 이터널스 멤버에 대한 이야기를 기존 마블 영화의 슈퍼 히어로와 똑같이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인류애와 자신들의 숙명 사이에서 서로 사랑하고 갈등하며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내면을 보여준다. 물론 슈퍼 히어로들에 대한 서사이기에 캐릭터의 내밀한 깊이감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인간이 평생을 두고 두려워하고 욕심내는 노화, 죽음, 부귀영화 등이 전부 의미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찾아 담아낸다. 바로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서다.

이 영화는 액션보다는 드라마의 비중이 높으며 이터널스 멤버 10명의 다양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각각의 캐릭터는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서사에 배분되고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그런 만큼 드라마의 분량은 더 길게 느껴진다.

세르시와 이카리스의 관계에서는 단순한 애정 신을 넘어 마블 영화에서 지금까지 보기 어려웠던 파격적인 장면이 묘사된다. 이들의 로맨스에는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데인 휘트먼(키트 해링턴)이 자리하기도 한다. 데인은 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적지만 속편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는 캐릭터다.

▲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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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로 알려진 테나(안젤리나 졸리)와 테나의 보호자로 인류를 강력한 힘으로 지켜내는 길가메시(마동석)는 아름답고 영원한 불멸의 우정을 보여준다. 이는 데비안츠와의 결전에까지 이어지며 서사 전체에서 큰 역할을 차지한다. 길가메시 역의 마동석은 그가 가진 마초 이미지와 '마블리'라 불리는 귀여움이 공존하는 시그니처 캐릭터 특징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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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히어로들이 많다. 캐릭터별로 이야기가 적당하게 배분되다보니 길가메시에 대해 헐크 이상의 액션이나 많은 출연 분량을 원했던 한국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마동석은 유머 코드의 큰 지분을 차지하며 기억에 남을 캐릭터로 각인된다. 영화 속에는 유머가 많이 등장하며, 그 중에는 DC 캐릭터들도 언급되면서 웃음을 준다.

원작의 사무라이에서 발리우드 영화배우로 인종이 바뀐 킨고(쿠마일 난지아니)는 마치 유쾌한 서부 총잡이처럼 등장해 활기를 불어넣는다. 마블 영화 최초의 농인(聾人) 히어로 마카리(로런 리들로프)와 동성 부부 가족을 꾸린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를 통해 다양성 영화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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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정신 조종 능력을 가진 드루이그(배리 케오간)와 십대 히어로 스프라이트(리아 맥휴)까지 합세해 영화 '이터널스'는 인종, 성별, 세대 전체를 아우른다. 이들 캐릭터에 부여된 플롯에서는 히어로와 빌런의 정체성, 인간에 대한 성찰, 탄생과 죽음의 우주적 순환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과 메시지를 던진다.

피터 팬과 팅커벨에 대한 시적인 은유 등을 포함한 대사, 다채로운 문화권의 로케이션과 아름다운 풍광, 우주적 웅장함을 지닌 프로덕션 디자인은 이 영화를 마블 영화 사상 가장 문학적이며 예술적인 작품으로 느끼게 한다.

▲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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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권 그리스·로마 신화의 차용은 각 캐릭터의 설정과 이야기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으며,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동화적 메타포는 성장 드라마로 서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

타노스와 데비안츠의 연관성, 셀레스티얼에게 부여받은 이터널스의 숨겨진 최종 임무, 이터널스와 데비안츠의 정체, 진실을 알게 된 이터널스 멤버들의 선택과 고뇌 등이 엮여 마치 미스터리 추리극처럼 연출되는 스토리는 흥미롭다.

이 작품은 앞서 MCU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솔로 무비 시리즈나 '어벤져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등 기존 마블 영화와는 액션 분량과 디렉팅이 확연하게 차이점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친숙했던 마블 캐릭터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생경함 등 기존 마블 영화와의 단절감이 존재해 관객의 평가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터널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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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의 작품성을 선호했던 관객의 경우, 그녀의 첫 대자본 프로덕션 히어로 영화에 ‘여정’이라는 공통의 특유 감성이 녹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다. 흔히 예술 영화에는 모 홍보사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아트버스터'라는 용어가 쓰이곤 하는데 이 영화야말로 아트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다.

특히 마블 팬이라면 만화책으로만 접했던 셀레스티얼의 코즈믹 호러적 스케일을 IMAX 대화면으로 접하는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OST에는 BTS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MAP OF THE SOUL : 7)'에 수록된 '친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칼 퍼킨스, 스키터 데이비스, 멀 해거드, 핑크 플로이드, 리조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돌비애트모스 포맷 영화인만큼 특수관에서도 생생한 음향을 체감할 수 있다.  

인류 존재 이유에 관한 질문과 인류애 그리고 희망을 전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영화 '이터널스'는 후속편을 기약한다. 마지막 2개의 쿠키 영상은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이어지는 혈통과 함께 페이즈4의 세계관 확장을 예고한다.

한편, '이터널스'에는 히로시마 원폭 장면이 등장한다. 이 신은 인간이 아닌 전지적인 존재 입장에서 문명 전달자이자 인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이터널스 멤버가 겪게 되는 고뇌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극의 흐름 상 일본을 원폭 피해자로 보이게끔 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 작품이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라는 점에 있어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전 세계 인류에 대한 존중과 사랑만큼은 명확하게 담고 있다. 

◆ 제목: 이터널스(원제: Eternals)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 타임: 155분
◆ 개봉일: 11월 3일
◆ 감독: 클로이 자오/출연: 젬마 찬, 리차드 매든,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셀마 헤이엑, 키트 해링턴/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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