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나랏돈 퍼주기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가 해운·조선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해 12조원을 쓰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기업부실을 국민 혈세로 메우는, 성공한 적이 별로 없고 기업의 모럴 해저드만 부추기는 과거 악습을 되풀이 하겠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면서 부실에 대한 규명과 책임 추궁은 빼놓았다. 금융당국이 부실규모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고, 부실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책은행에 대한 쇄신책도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이유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들을 얼렁뚱땅 넘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부실기업의 대주주와 경영진은 물론, 사실상 부실을 방기한 국책은행과 정부부처에 법적 책임을 묻고 확실한 자구 노력을 요구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철저하고, 성역 없는 수사로 국민들의 의혹과 배신감을 풀어주어야 한다.
 
대우조선은 2013, 2014년 영업이익을 냈다고 했다가 갑자기 ‘대규모 손실이 났다’로 말을 바꾸었다. 부실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식회계를 했다는 의심을 사고도 남는다. 이런 기업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다시 수 조 원을 준다면 그야말로 ‘밑 빠진 배에 돈 붓기’이다. 
 
그동안 퇴직자들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면서 부실을 방치한 산업은행도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눈감고 감시한 회계 법인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지난해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결정이 서별관회의를 통한 감독당국의 관치금융이었다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사실이라면 구조조정 문제가 정권실세들이 밀실에서 정치논리를 앞세워 결정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구조조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이 실상  또한 제대로 밝혀야 한다.
 
차제에 허술한 금융감독 체계도 개편해야 한다. 국책은행의 역할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자금 수혈 대상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구계획 뿐만 아니라 이들 국책은행 기능의 효율적 재편을 비롯한 부실한 금융감독체계 전반에 대한 틀도 새로 짜야 한다.
 
정부가 부실 추정치도 밝히지 않고 구조조정 이후의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보다는 불신만 안겨준다. 정부는 “추정 결과 구조조정 상황이 악화될 경우 산은과 수출입은행에 5∼8조원 수준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고만 밝혔을 뿐 부실채권 추정치에는 입을 닫고 있다. 이유는 관련 업종이나 회사의 건전성에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다는 이유이지만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워주는 셈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조선업 세계 전망을 보면 2018년부터 상황이 나아질 수 있어 그때까지 버티도록 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구조조정안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물론 조선업 자체만 놓고 보면 전문가들의 전망도 그렇지만, 유가나 경쟁상황 등 다른 변수들이 있어 속단하기 어렵다.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 해운업 구조조정의 실패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단 한 번도 국가경제, 국민경제를 들먹이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그 반대였고, 국민들은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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