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그 얼굴에 햇살을 죽은 나무가 환하게 웃는다웃는 얼굴을 보고 내가 웃는다천오백년 동안 부처가 웃고 계신다볼썽사나운 일도 많았을 텐데산길에서 아귀가 아가리를 벌리자유선형 몸통을 햇살이 투명하게 비춘다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사랑은? 한라산 백록담은 청정한 물로써신비한 사랑을 보여준다텃밭 상추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사랑의 크기만큼 자란다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이 사물놀이] 이제는 웃는 거야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로일로(一怒一老)웃으면 젊어지고, 화내면 늙는다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길가다 자세히 보면 돌이 웃는다천년 동안 풋풋하게돌이 웃고, 웃는 돌을 보고 내가 웃고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연둣빛 향기 하나의 문이 닫히면다른 문이 열린다사람과의 거리 두기로이제야 식물에 눈이 간다봄꽃이 지고 연둣빛 축제가 시작된다세상의 이목이 바이러스에 쏠린 때연둣빛 향기가 희망인 것을비로소 알았다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명상과 멍상 눈에 안 보이는 작은 코로나가공기 중에 떠돈다사람 사이에 거리를 둔다따로 또 같이 두렵다명상으로 마음을 달랜다눈 뜬 채 멍상하는 개표정이 천진난만하다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삶은 감자와 계란 삶은 무엇인가이글이글 타는 불 위에 놓인냄비 속의 감자인지, 계란인지싹이 난 감자가 밭에 묻히면 구황 작물계란 껍데기를 깨고 나오면 병아리다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땅에 묻힐 것인지 껍데기를 깰 것인지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아이러니 사회적 거리두기세상과의 단절, 사람과의 단절로오롯이 내면의 역량에 집중하는보리새싹의 싹발 투혼구황 작물 감자가싹싹하게 말을 건넨다척박한 땅에서도 빨리 자라당신과 입맞춤하고 싶다고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사납게 보이는 이구아나의외로 성질이 온순하다곰은 둔해 보여도곤충·물고기·물개를 잡아먹는육상 최대의 육식 동물이다동화 속 곰돌이 푸가코로나 19에 갇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다른 누군가를 위한 배려와 생각들이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 거야.”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경칩 괴물 경칩(驚蟄) 즈음에개구리는 어디 가고안 보이는 괴물이 나타났다도시에, 절집에, 마음에, 방송에불안은 멀리 하고, 마음은 오롯이두 눈 바로뜨면 보이는아, 사람 사는 세상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바위러스 눈에 안 보이는 코로나 19가지구촌 식구들을 울린다고깔모자를 쓴 왕눈이도 눈물이 그렁그렁여기서 슬퍼할 수만은 없다숨 고른 뒤 주먹 쥐고 어퍼컷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황홀한 키스 사랑을 표현하는 입맞춤살면서 사람을 만나고사람이 시나브로 사랑으로 바뀐다어린 식물이 흙과 해와 장난치고나뭇잎이 바람을 만나 물들고어린이와 놀다 변신 중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기도 서서 기도하거나무릎 꿇고 기도하거나간절하기는 마찬가지다바람을 쌓는 천 개의 돌탑당신의 소망은 무엇인가?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나이테 세월이 주는 훈장나이테사람은 물론 나무와 돌도나이를 먹는다반듯하게 살든절규하면 살든저층민으로 살든내 나이가 어때서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생명의 왕관 왕관을 쓰려는 자왕관의 무게를 견뎌라생명의 왕관을 쓴 감자는눈물 나도록 경이롭다역사의 강을 건너는인터넷 보부상(褓負商)등짐과 봇짐의 무게를 이겨라배달민족의 하늘은 청청(靑靑)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대한 동백꽃 대한(大寒) 무렵대한민국 남쪽 제주도에꿈틀꿈틀 기지개 켜는동백(冬柏)꽃이 한창이다산방산 가는 길가의 동백꽃남원읍 위미리(爲美里)의 동백꽃따로 또 같이매운 칼바람에도 환하게 붉다뱀도 반한 동백꽃에 내 마음도 꿈틀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꽃꽃하게 대설날함박눈 대신 철쭉꽃이 환호성을 지른다동네 뒷산 양지쪽에는빛 고운 개나리꽃이 성글게 피었다수천개 꽃잎을 머금은동백꽃봉오리의 붉은 하늘이 막 열릴듯하다겨울이 한창이고세상은 꽃꽃하다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빨간 맛 세 자매 한겨울에 더 빛난다열정으로 빨갛게눈이 쌓이면 더 또렷해진다‘이래 봬도 장미과야’ 외치는아파트 정원의꽃사과, 마가목, 산사나무 열매빨간 맛 세 자매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해바라 2019년 마지막 해가동네 등산로 잡목 사이로 저문다경자년 새해가 밝았다분명 새 해가 떴지만해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구름이 해를 가리고 미세 먼지가 난무했다일기가 불순했기 때문이다해는 어디 하늘에만 뜨는가마음에도 뜨고 머리에서도 빛난다2020년은 날마다 새 해 보기하고 싶은 것 즐겁게 해보기오늘 당장 해바라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이 해가 간다 2019년 돼지해가 저문다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시대와의 불화(不和)로 다투었지만결국 이 해가 간다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믿으며, 바라며, 견디는 것이다사랑은 아끼고, 나누고, 바꾸고,다시 쓰는 것이다병(甁)들의 무사 귀환과 혁신이동짓날 깊은 어둠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SR(에스알)타임스 오승건 시인의 사물놀이] 대설(大雪)과 동지(冬至) 사이 겨울이 한창이다뒷산 고사목(枯死木) 촌에는새 생명이 태어난다부리부리한 멧돼지는낙엽 수북한 오솔길로 먹잇감을 찾아나선다겨울 잠을 놓친 초롱이는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